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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사회투자 이종수 이사장, 해외 누비던 은행설립 전문가 ‘사회적 금융’으로 빈곤퇴치 나서

한국판 마이크로크레디트 ‘그라민은행’, 착한 금융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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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5호 정의식⁄ 2013.12.02 11:52:58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 이종수 이사장은 자신의 일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라며, 신영복 선생이 써줬다는 편액을 사무실 한켠에 걸어놓았다. 물처럼 사회 구석구석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적시는 것이 사회연대은행과 한국사회투자의 임무라는 얘기다. 다른 은행과는 달리 수익이 아닌 빈곤 퇴치와 패자 부활을 목표로 하는 색다른 두 은행, 사회연대은행과 한국사회투자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수 이사장의 첫 직장은 외국은행, 그것도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은행 체이스맨해턴뱅크의 한국지사였다. 지금 같으면 서로 앞다투어 가고 싶어 할 직장에 입사하게 된 것은 희한하게도 70년대 유신 정권 때문이었다. “들어가려 해서 들어간 게 아니고, 학교 다닐 때 감옥에 다녀왔거든요. 그거 땜에 다른 회사는 취업이 안됐습니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73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인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운동권과 비슷했지만, 학비 벌기에 바빠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학년 때 잠시 친구 부탁으로 학내에서 유인물 몇 장 나눠줬는데, 그게 긴급조치 위반 사건이 됐다. 소위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최근에야 위헌 판결이 나서, 3개월 전 그는 39년 만에 재판을 다시 받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긴급조치 구속, 신원조회 피해 외국계 은행에 입사 당시 일반법정도 아닌 군법재판에서 7년형이라는 과도한 형기를 판결받았지만 다행히 7개월만 살고 나왔다. 짧은 감옥살이였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보다도 더 가난한 처지로 태어나,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인생의 목표가 생긴 기간이었다. 하지만, 감옥을 나와서는 다시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졸업을 했지만 실형을 살았다는 이유로 신원조회에 걸려 대부분의 국내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없었다. 다양하게 알아보다 우연히 만난 대학동창생의 도움으로 국내의 미국 은행이 신원조회를 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원서를 내서 다행히 붙었다. “첫 번째 직장 체이스맨해턴은행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회사였습니다. 야학 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초보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안정된 생활을 하다보니 감옥에서 품었던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죠.” 취미가 은행 설립(?),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 이종수 이사장에게는 남다른 특별한 취미가 있는데 다름 아닌 ‘은행 세우기’다. 하나도 아니고 5개나 되는 은행을 세웠다. 체이스맨해턴은행 근무 이후 호주 웨스트팩은행으로 이직하면서 서울지점을 설립했는데 그것이 그가 세운 첫 번째 은행이다. 두 번째 은행은 홍콩에 근무하다 인도네시아로 가서 세운 합작은행이다. 세 번째 은행은 캄보디아에 세웠다. 이 세 은행은 모두 상업적 은행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 당시 캄보디아는 한 나라에 수상이 둘이었지요. 제 1수상 라나리드, 제 2수상 훈센이 공동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장관도 두 명이고, 시스템이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매일 총 쏘고 바추카포 쏘고 싸워서, 죽을 고비도 제법 넘겼습니다. 내전이 이어지고 있던 킬링필드의 나라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옛날 감옥에서 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 두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건너와서 1년 정도 쉬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노동부를 도와 직업훈련원 사업을 추진하다 99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업에 자신의 은행업 노하우를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이크로크레디트 공부를 하고, 2000년대에 사회연대은행을 세워 운영하다가, 작년에 한국사회투자까지 설립하게 되었습니다다. 이렇게 총 5개의 은행을 세웠지요.” 2000년에 설립한 사회연대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개인창업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이 주 업무다. 마이크로크레디트란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저명한 방글라데시의 사회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그라민은행’에서 시작된 개념으로, 근로능력과 자활의사가 있는 농촌·도시 지역의 빈민층을 대상으로 담보나 보증 없이 소액의 자금을 대출해줘 자립을 돕는 대출 방식을 말한다. 사회연대은행은 10여년간 운영하면서 약 930억원의 자금을 모아 평균 2000만원 내외의 소자본 대출을 약 1700건 이상 진행했다. 이 중 약 1500건의 대출이 회수되어 약 80%의 회수율을 보였다. 창업 후 5년내 문닫을 확률이 99%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고무적인 수치다. 아무런 담보도 보증도 없이 20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은행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런 대출의 회수율이 80%가 넘는다는 것도 신기하다. “초창기에 우리나라에서 창업 성공하기가 아주 어려운데 어떻게 도와주나.. 우리나라 모델을 생각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망할 틈을 안줘야 합니다. 돈만 주는 게 아니고 성공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계속 해주고 관리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하더군요. 빈곤층의 경우 사업 노하우가 거의 없어서, 음식점 창업은 전문가들이 입지선정, 소스 개발 등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의 두 번째 사업은 빈곤층 아이를 위한 지역아동센터 사업이다. 200억 정도 들여가며 했다. 요즘 집중하는 사업은 청년층, 대학생들을 위한 사업이다. 매년 약 10만명의 대학생이 저축은행 등의 대부업을 이용해 학자금을 마련,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오르고 있다. 전환대출로 그런 악성 대출을 정상화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연대은행이 집중하는 사업은 은퇴자들을 위한 교육사업이다. 은퇴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할 수 있게 훈련시키고, 사회단체 활동이나 창업 등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미소금융과 악연 사회연대은행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이 이사장은 ‘휴면예금’을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세우게 됐다. 마침 스승이자 동지인 유누스가 노벨상을 수상한 뒤 한국을 방문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하는 기회가 생겼다. 면담장에 같이 참석해 아이디어를 설명했는데, 다행히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후속작업을 지시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사업은 표류하게 된다. 결국 원래 의도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미소금융’이라는 소액대출사업기관이 출현하게 됐다. “미소금융의 기틀을 제가 세웠고, 법안도 제가 대통령 만나서 읍소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 바뀌며, 저희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 영국도 휴면예금 논의가 있었는데, 우리는 실패했지만 영국은 잘 되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 미소금융이 사회연대은행에 타격이 됐을까? 2009년만 해도 사회연대은행의 한해 대출은 100억원 정도 규모였다. 하지만, 미소금융이 생기자 연간 대출액은 바로 45억원, 25억원으로 줄어들기만 했다. “MB정권 시대에 정치적 이유로 미소금융을 서민 금융 상품으로 만들었는데,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서민 금융 ‘상품’이 아닙니다. 복지를 이루려는 금융이지, 은행이나 금융기관의 ‘상품’으로 보면 안 됩니다. 또 돈만 가는 게 아니고 컨설팅과 교육이 같이 가야하는데, 이런 것들을 정부가 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관료주의에 빠지기 쉽고, 빌리는 쪽에서도 ‘정부 돈이라면 안 갚아도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가 직접 안합니다.” 결국 미소금융은 관계자의 횡령, 뇌물수수 등 다양한 사건을 양산하며 아직까지 표류하고 있다. 복지 아닌 투자로 빈곤을 퇴치하자 “우리 접근 방법은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복지 논쟁이 많습니다. 기초연금, 무상복지 등 복지 이슈가 많지요. 근데 재원은 한정돼있으니 문제가 됩니다. 재원은 세금인데 올리려하면 저항이 많지요. 그래서 복지를 재원으로만 하려 하지 말고 투자를 통해 선순환 시켜보자. 시혜적 복지와 투자적 접근 방법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입니다.” 한국사회투자는 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해 가난에 이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은행이다. 2012년 말에 설립됐다. 모체는 사회연대은행으로, 1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다. 같은 건물의 2층은 한국사회투자, 6·7층은 사회연대은행이 쓰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이 주로 개인 창업을 돕는다면, 한국사회투자는 사회적 기업, 프로젝트, 협동조합을 돕는 사업을 한다. 때마침 박원순 시장이 도우미로 나섰다. 박원순 시장의 선거공약 가운데 사회투자기금 3000억원을 조성해 서울시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청년 소셜 벤처 등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는데, 이 사업의 위탁기관으로 선정이 된 것이다. 다만 공약 금액은 30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깍였다. 서울시가 500억원을 출연하고, 민간이 500억원을 출연해 운영하는 사업으로, 이미 여러 사회적 기업에 지원돼 150여억원이 사용됐다. 대표적 사업이 암사동 정수장의 태양열 발전소 사업이다. 정수장 풀(pool) 위에다 집열판을 깔아서 태양열 발전을 하는데 약 130억원이 투입됐다. 전력을 생산해 한전에 팔아 한국사회투자로부터 빌린 원리금을 갚고, 남는 수익으로 근처의 에너지 취약 계층 1800가구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에도 일조하고 있다. 쪽방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에도 나섰다. 건설 노동자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에 한국사회투자가 돈을 빌려주면, 그들이 집을 짓고, 설계 등은 재능 기부를 통해 진행한다. 다 만든 후에 SH공사에 팔면, SH공사는 이를 저소득층에 저렴하게 공급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어차피 부담하게 될 비용입니다. 이를 좀 더 생산적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투자자 모집해서 해결할 테니 예컨대 자살율이 낮아지거나 노숙자가 줄어드는 등 성공한다면 그에 투자될 비용을 우리에게 지급해라. 성과연관 채권 발행 개념입니다. 투자자를 모집해서 NGO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부나 서울시가 보상하는 구조이지요. 사회투자란 이런 겁니다”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하는 은행, 크게 만들 것… “우리가 후원한 사업이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라는 기업이 있는데, 아이들 셋과 장모님 모시고 월 6만원짜리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지원을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요. 이분들이 지원받으며 결심한 것이 ‘우리가 지원 받았으니까 매일 첫 매출을 봉투에 담아서 돌려주자’라는 겁니다. 매일 첫 번째 손님의 매상을 모아 지금까지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든 간에. 30일 모으면 대략 30만원이 좀 넘는데, 그걸 매달 가져옵니다. 자기가 그런 혜택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눈다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업이 안정된 후엔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프랜차이즈를 내준다고 한다. 그냥 노하우를 알려주고 창업을 돕는 것이다. 이를 사회연대은행은 ‘릴레이 창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주는 것이다.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나서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그는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 “금융 30년 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은행은 원래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겁니다. 무역을 할 때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금융이 발전하다보니 산업을 지배하고, 자기들끼리 파생상품이니 만들어서 거래하다 2008년 외환위기 같은 걸 초래했지요. 그런 일 한번 발생하면 모두가 힘들어지고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도와서 살려놓으면, 경영진들은 다시 탐욕을 보여 월가 점령운동 같은 걸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게걸스러운 금융 말고, 금융의 원래 기능을 찾자. 착한 금융, 사회적 금융, 인간을 이롭게 하거나 자연을 이롭게 하는 활동에만 투자하는 은행. 그런 은행이 세계적으로 많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제대로 된 은행을 만드는 것, 사회적 은행을 아주 크게 키우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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