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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모용수]몽상적 해학과 풋풋한 서정의 보편성

전래의 민화나 전설 등 익숙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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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6-357호 박현준⁄ 2013.12.16 14:26:22

작가 모용수의 작업세계는 풋풋하고 정감있는 동화적 몽상과 해학이 함께하는 것이다. 마치 동화를 읽거나 민요를 듣는 듯 편안하고 은근한 서정은 그의 작업에서 전해지는 각별한 정서이다. 간결한 이미지와 원색의 명징한 화면을 통해 정돈된 화면은 어눌한 듯 하지만 특유의 감칠맛 나는 풋풋한 서정을 담고 있다.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부담하기 힘든 무거운 주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래의 민화나 전설 같이 익숙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내는 것이기에 부담이 없는 화면은 그 자체로 정감이 간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에 의탁하는 것이기에 낯설지 않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기에 지루하지 않다. 그는 아련한 동심의 저편에서 길어 올린 기억과 상상의 편린들을 모아 편안한 몽상의 꿈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특유의 정서와 감성은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며 일정기간 지속되어 온 것이다. 편안하고 정감 있는 화면과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그윽한 서정은 마치 세끼손가락에 곱게 물들인 봉숭아물과 같다 할 것이다.

은은하고 여린 것이 화사하고 예쁘지만 지나치게 진하지 않아 오히려 애잔하고, 지나치게 선연하지 않아 더욱 깊이와 감칠맛을 더하는 그런 정서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심미적 특질의 한 모양일 것이다. 둔탁한 듯 거칠고 소박한 듯 무심하지만 특유의 넉넉함과 분방함으로 무한한 변용과 해석의 여지를 담보해주는 이러한 심미특질은 정녕 낯설지 않은 것이다. 화면마다 등장하는 호랑이는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는 중심이 될 뿐 아니라 그윽한 몽상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거나, 혹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의 화면에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 특질들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호랑이들은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한 결 같이 어수룩하다. 가늘게 실눈을 뜬 정형화된 호랑이들은 이미 맹수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된 것임이 역력하다.

나이 먹은 화강암 같은 푸슬푸슬한 질감 마치 사념에 젖어 소요하듯 화면 곳곳에서 온갖 것들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이러한 호랑이 형상들은 마치 관조하는 사색자의 모습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것은 과장과 억지로 만들어진 우스꽝스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익살맞은 것이어서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물론 이러한 미소는 파안의 큰 웃음이 아니라 절로 입 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게 되는 회심의 미소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독특한 정서에 대한 동의의 미소일 것이며,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감성에 대한 공감의 표시일 것이다.

콧등이 파란 것이 인상적인 호랑이들은 마치 마실을 가듯 어슬렁거리며 세상의 온갖 것들에 관심을 보인다. 파란 달개비에 관심을 보이다가 살구나무 꽃이 흐드러진 나뭇가지의 새들에게도 눈길을 준다. 무심히 피어난 봉숭아꽃도 호랑이의 벗이 될 뿐 아니라 물 위에 비친 보름달도 더불어 눈길을 나누는 대상이 된다. 그것은 그저 형상과 형상으로 이루어진 조형의 세계가 아니라 봄으로써 읽혀지고, 읽음으로써 느껴지는 독특한 서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한없이 정겹고 풋풋한 서정은 물이 넘쳐나듯 풍부하고 끝이 없다. 그것은 정형화된 틀로 읽혀지는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무한히 번안되고 해석되며 그 공명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나가는 물위의 동심원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조심스럽고 은근하게 다가와 어느새 마음을 흠뻑 적셔 버린다. 마치 채 걸러지지 않은 거친 흙으로 벽을 바르듯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추구하는 것은 근작들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변화이다. 몽상적 상상과 풋풋한 정서는 여실하지만 이에 더해지는 거칠고 질박한 화면은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준다, 그것은 정형화된 형상들과 아련한 정서를 더욱 농밀한 것으로 성숙시키고 있다. 마치 나이 먹은 화강암의 푸슬푸슬한 질감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화면의 질은 이미 익숙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읽힘도 일정 부분 기성화된 것이다. 작가가 굳이 이를 차용함은 회화적 요소의 강화를 통해 조형을 공고히 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화면이 그저 읽힘의 대상으로 경도됨에 대한 보완일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읽힘의 내용들을 더욱 풍부히 하고자 하는 조형적 고려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중략) 현대라는 시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회화의 양태는 실로 다양하며, 이러한 다양성은 바로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무수한 개성의 무제한적인 발산으로 이루어진 현대미술의 격랑 속에서 극히 보편적인 옛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을 표현해 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진부하고 고루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현대라는 시공을 반영해 내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묵은 몽상의 동화적 상상과 가공되지 않은 소박하고 풋풋한 감성을 통해 건져 올린 정서는 분명 보는 이에게 일정한 공감을 느끼게 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저 옛 사람들만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탯줄을 뭍은 모든 이들에게 고루 작용하고 소통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간속에서 건져 올려 진 절절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표출함으로써 현대라는 시공에서의 실존을 확인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가 발현해 내고 있는 그만의 특수성이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과 튼실한 연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의 화면에 절로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 글·김상철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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