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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 주목 작가 - 이승희]‘현대의 옛 것’으로 환생한 도자기

108배를 마친 후 수도승의 경건한 마음을 작품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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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8호(송년) 왕진오⁄ 2013.12.24 16:33:36

곱게 갈아 만든 흙물을 낙숫물처럼 부어 마치 동굴에서 자라난 종유석처럼 입체감을 띠며 수백 년 전의 도자기들이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눈으로만 봐서는 붓으로 그려낸 그림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만지면 진짜 도자기를 만질 때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흙과 불, 물, 빛, 공기, 바람 그리고 수도승의 자세처럼 인고의 시간으로 빚어낸 작가 이승희(55)의 평면 회화 도자작품의 첫 인상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해 '다름'을 실천하는 작가 이승희가 12월 18일부터 2014년 1월 8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예상을 뛰어 넘은 예상'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마련한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2∼3개월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계나 시각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작가의 감각으로 흙을 올리기 때문이다. 작품에 들어있는 이미지들도 독특하다. 박제처럼 박물관 유리장안에 갇혀있는 도자기들을 오늘의 시간으로 끌어낸다. "내 작품에는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그려 넣고 있죠. 오사카 민예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의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작업에는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유물을 작품에 담아 보려 합니다"

이 작가가 우리 유물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은 도자기가 가진 평범 그 이상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도자기에는 미술과 색채가 모두 담긴 종합적인 예술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물건들이지만, 미처 우리가 놓치고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작가적 감수성이 들어있다. 작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랬을 것 같은 작업을 진행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바로 조선시대 화가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을 작품에 넣어 고전 유물을 세상에 끌어내 재탄생 시키고 싶다고 전한다.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대, 작가와 대중 간의 소통을 원하는 이 작가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그 무엇을 뜻하지 않는다. 대중과의 소통은 단순한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맑은 흙물이 겹겹이 쌓여지는 동안, 티끌 높이의 결을 조심스럽게 긁어내는 동안, 선과 면을 고르는 동안, 구워진 후발현할 색상을 예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들어간 노고의 깊이 만큼이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작업을 펼치고 있는 이 작가는 "내 작업은 절하기와 유사한 것 같아요, 절의 횟수는 변하지만 그 느낌은 매번 다른 것 같다. 내 생활이 작업에 그대로 투영된 것 같다"며 108배 이후의 마음에 들어오는 감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자기에 얽힌 '예상을 뛰어 넘은 예상' 미세한 바람의 흐름과 빛의 반사가 사진도 회화도 조각도 아닌 작가의 평면 도자 작품을 완성시킨다. 작가가 이렇게 고전 유물을 세상에 끌어내 재탄생 시킨 것은 형태적 기법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시공을 압축시켜 과거가 현대로 편입해 철저히 현대성이 부각된 작품으로 탈바꿈해 재탄생 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가는 역사 속 옛 화가와 현대의 화가, 완벽한 대칭 입체구조를 물레로 제작하는 전형적인 도예가와 평면에서 입체 효과를 구현하는 독특한 도예가의 관계 속에서 새 지평을 개척했다. 통시적, 공시적 개념들을 선택적으로 작품에 투영하며 역사와 입체가 평면으로 녹아들어 새로운 형태로 창출된다. 치밀하게 계산되고 기계적 수치로는 감지할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의 시각과 촉각에 의해서만 형성되고 느껴지는 그의 작품 속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예상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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