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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와인 칼럼]좋은 포도가 맛있는 와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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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9호 김준철 한국와인협회장⁄ 2013.12.31 13:29:48

포도는 기름진 토양에 심는 작물은 아니다. 기름진 땅에는 밀을 심고, 포도는 그냥 두기는 아깝고 농사는 잘 안 되는 언덕배기의 거칠고 메마른 토양에 심었다. 와인은 0.1%도 안 되는 향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와인용 포도는 야생에 가까운 거친 환경에서 그 향이 진하게 풍긴다.

들에서 캐낸 냉이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의 향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신 수확량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그래서 고급 와인산지에서는 단위면적 당 생산량을 얼마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좋은 와인용 포도란 양이 적더라도 향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고 신맛이 적절한 것이라야 한다.

포도의 당분은 광합성에서 나온다. 즉 햇볕을 잘 받아야 당도가 높아지며, 색깔도 진해지고, 향도 잘 형성된다. 반대로 그늘지거나 축축한 토양에서는 산도가 높아 신맛이 강해지며, 비가 많이 오면 알맹이는 커지지만 당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고급 와인이 나오는 포도밭은 대개 남향으로 언덕진 곳에 있다. 남향이면 햇볕이 잘 들고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주며, 경사진 포도밭은 배수가 잘 되기 때문이다.

또 토양은 모래나 자갈이 많이 섞여 있어서 뿌리가 깊이 뻗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중간에 점토가 있으면 압력을 받아 굳어져서 더 이상 뿌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뿌리가 깊으면 포도는 안정되게 지하수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가뭄이 들든 홍수가 나든 전혀 관계없이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어린 포도나무보다는 나이 든 포도나무의 뿌리가 더 깊기 때문에,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좋은 와인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포도는 4월이 되면 움이 트기 시작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핑크 빛 움이 터지면서 잎이 형성되는데, 이 때 서리가 내리면 치명타를 입는다. 말 그대로 싹수가 노랗게 되는 것이다. 이 서리를 방지하기 위해서 포도밭에 화로를 설치하거나 풍차를 돌려서 바람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6월이 되면 꽃이 피고 조그만 열매가 달린다.

푸른 열매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8월부터는 열매가 부드러워지고 슬슬 색깔이 변하면서 익어 가는데, 이때부터 수확할 때까지는 비가 아예 안 오는 것이 좋다. 릴케의 시처럼 남국의 햇볕이 이틀이라도 아쉬울 때다. 꽃이 피고 백일이 되면 수확을 하는데 꼭 정해진 것은 아니다. 포도의 성숙도는 와인의 품질과 타입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수확 시기는 경험적으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만약 조건이 좋지 않아 포도의 당도가 낮으면 그만큼을 설탕을 보충하고 산도나 타닌도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조작이 원래의 포도성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토질이나 기후조건이 양호한 곳에서 양질의 와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포도는 와인 그 자체의 품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요리를 잘 하십니까?” “저는 김치찌개를 잘 끓여요”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지만, 김치가 맛있어야 김치찌개가 맛있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맛없는 김치로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 수는 없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포도가 와인용으로 적합해야 와인이 맛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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