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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이 경쟁력이다 ⑨]스스로 찾는 ‘행복 리더십’…설레는 인생설계에 답 있다

‘행복전도사’ 박상묵 한서대 교수(전 공군교육사령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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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1호 이진우 기자⁄ 2014.01.13 14:37:43



인간의 수명 100세 시대. 50세를 기준으로 그 이하와 이상의 세대가 5:5의 비중. 대한민국 평균 은퇴연령 46~47세. 이는 앞으로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올 현실이며,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사람들의 삶이 버거워 질 수밖에 없고, 행복은 우리에게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서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

사실상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단지 그 행복을 스스로 멀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행복은 우리가 오라고 손짓하면 곧바로 우리 옆에 다가온다. 우리가 행복을 찾으려면 반드시 ‘행복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행복 리더십’은 ‘셀프 리더십’에서 나온다. ‘셀프 리더십’이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셀프 리더십’은 자신의 유일한 리더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 최우선이다.

CNB저널이 만난 ‘행복 전도사’ 박상묵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전 공군교육사령관)는 “행복은 스스로 찾아 얻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행복의 기준에 대해 “마음이 설레는 인생설계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행복을 찾는 것이다”면서 “우리가 휴가를 갈 때 설레는가, 아니면 돌아왔을 때 설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대부분의 경우 휴가를 출발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휴가지에서는 어떻게 즐길 것인지 등 온통 마음이 설레고 흥분돼 출발 전날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72년 2월 1일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래 2010년 1월 31일 공군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정확히 만 38년을 군에 몸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현역 시절엔 F5(일명 ‘제공호’) 전투기를 몰고 드높은 창공을 자유롭게 지배하면서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했다.
전역한 이후 서울에서의 노후생활을 모두 내려놓은 박 교수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부인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면서, 또 대학 교수로서, (행복)강사로서, 그리고 미래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노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행복이 넘치는 설레는 인생설계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시골에 간 이유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설명을 했다. 그가 현역에 있을 때는 주로 공관에서 생활했는데, 지휘관이나 장군이 머무는 공관은 주택으로서의 효용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계자들과의 호흡을 위해서도 쓰이기 때문에 일반 주택보다는 비교적 넓은 편이었다.
또 박 교수의 부인은 공예를 평생의 일로 여기며 살고 있어 그녀의 공방이라든지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필요했다. 그런데 그가 전역한 후 재산정리를 하고 보니, 일산에 소재한 32평짜리 아파트가 전부였다고 한다. 박 교수 부부가 일산의 아파트로 들어가 살려면 그동안 누려왔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가능했다. 박 교수는 부인과 심사숙고하면서 상의한 끝에, 공예작품들을 버리기도 아깝고 공방도 유지해야 하므로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시골로 내려가 설레는 인생설계를 하다
그래서 비록 아무런 연고는 없었지만 충남 예산군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그곳에는 박 교수가 평생을 좋아하는 비행기를 가끔씩 탈 수 있는 한서대비행장이 근처에 있었으며, 때마침 한서대학교 항공학부에서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교수로도 재직할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일명 ‘행복강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박 교수는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중국요리를 먹을 때 짬뽕을 먹으면 짜장면을 못 먹은 게 아쉽고, 짜장면을 먹으면 짬뽕을 못 먹은 것이 내내 아쉬워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난 뒤에도 포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하는 것과 매한가지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산 아파트를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가 뒷산과 계곡을 포함해 약 1500평정도 되는 땅에 터 잡은 박 교수의 전원주택은 넓은 지형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조망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란다. 

박 교수는 “사람에게 많은 땅이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즉 소유는 조망에 있는 것이지, 1년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한곳에 수만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 차가 집까지 올라갈 수 없어 마을 어귀에 놓아두고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불편이 다소 있다. 하지만 훌륭한 조망을 얻는 대신에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바로 일 년에 몇 차례 정도 겪는 이러한 불편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안을 들어가 보면 거실에는 유리전창을 내서 밖이 훤히 보일 수 있도록 했으며, 부엌에서도 밖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유리창을 달았다. 또 부인은 평생의 업이랄 수 있는 공예를 계속할 수 있어 행복하고, 박 교수가 강의를 하러 전국 방방곡곡을 누빌 때에도 때로는 부인과 동행하면서 부부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단다. 특히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거나 자녀교육 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강연할 때에는 그의 부인도 일부를 맡아 강의를 한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박 교수의 서재에는 그가 모친의 유품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는 괘종시계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 괘종시계는 6·25전쟁이 나고 피난할 당시에 박 교수의 모친이 등에 업고 나온 것이다. 모친은 9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고, 박 교수는 “어머니 생전에 그 난리 통에 가족들 건사하기도 힘든 와중에 왜 그 괘종시계를 가지고 나오셨는지 여쭙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가 남겨주신 그 괘종시계는 아마도 100년은 족히 된 골동품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현재는 시계가 고장 나서 2시 24분에 멈춰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맞고 있는데, 괘종시계가 멈춰있는 2시 24분은 자정이 되는 시간을 100세로 가정하고 환산하면, 현재 그의 나이인 60세와 공교롭게 일치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은 하루를 기준으로 보면 정오를 넘긴지 얼마 안 된데다가 점심식사를 맛있게 한 후 약간의 식곤증을 느끼면서 오후엔 무엇을 할까 기대하는 시간대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대인 것이다.

인간 60세…성과를 가장 크게 내야하는 나이
박 교수는 “이제 군에는 나와 함께 근무했던 동기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이가 은퇴 후에 고작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이나 받으면서 노후를 보내기엔 이르다. 오히려 그간의 경험과 지식들을 모아서 성과를 가장 크게 내야하는 나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5년 뒤에 박 교수가 65세가 되면 괘종시계는 3시 30분을 가리킬 것이다. 아직도 해가 하늘에 떠서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때는 대학교에서도 정년퇴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엔 무엇을 할 것인가? 박 교수는 군 전역한 이후 대학에서, 사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도 사람들에게 뭔가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서 행복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미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명강사과정을 수료한 바 있다. 그런데 강사로 나서려면 파워포인트 사용에 능숙해야 했고, 때로는 동영상 편집도 직접 할 수 있어야 했다. 그가 군에 있을 때는 지휘관을 비롯해 장군으로서 역할을 하다 보니 컴퓨터를 직접 다루며 문서작성이나 동영상 편집 따위를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파워포인트와 동영상 편집 등은 박 교수에게는 난생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처음엔 책도 이해가 안 되고, 밤을 새워 가면서 문서작성 연습을 했어도 진전이 없었다. 
박 교수는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잠만 자면서 결국에는 이겨냈다. 그리고 강사로서 대학 강단에서만이 아니라 기업체, 관공서, 사회교육기관 등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는 행복을 누리게 됐다. 그는 또 한국강사협회에 입회한 후 목표를 5년 내에 명강사 타이틀을 따는 것으로 정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결국 목표를 3년 단축해서 2년 만에 명강사 120호에 등록됐다. 
박 교수는 강사가 좋은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스스로가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 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 즉 교육대상자들에게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강연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마지막은 강사로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데는 별다른 밑천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언제까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 교수는 적어도 80세까지는 강사로서의 일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때 괘종시계는 7시 8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데 한 여름이라면 그 시간에도 해가 여전히 하늘에 떠서 세상을 밝힌다. 아울러 하루의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일에 더 박차를 가해 가장 열심히 하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가 떨어진 이후엔 가족들과 모여서 하루의 덕담을 나누고 정성스럽게 차린 만찬을 즐기는 선물이 기다린다.


설레는 인생설계…구체적 계획과 준비 있어야
박 교수는 지난 2011년 겨울방학을 맞아 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분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1일에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10년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 솔방울을 잘 말리면 부풀어 벌어지면서 솔씨를 뿌린다. 이 솔씨를 심어 정성스럽게 한 달 정도를 키우니 10cm 정도까지 자라면서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 뿌리를 그대로 두면 잔뿌리가 땅 속으로 뻗어서 나중에 분재로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잘 발아된 뿌리를 3분의 2 정도 잘라내고 마사토 위에 다시 심어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중순에 이르러 소나무 묘목이 됐고 뿌리 역시 방사형으로 잘 내렸다. 또다시 묘목의 뿌리를 3분의 2 정도 잘라낸 후에 이를 정문 옆의 두어 평정도 되는 땅에 100주의 소나무를 심었다. 이 소나무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온갖 정성을 받으며 자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나중에 좋은 분재 소재가 될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미니 정원수를 이루게 될 것 같다.
10년이 지나 박 교수가 70세가 될 때면 이 소나무들은 훌륭한 분재 소재로, 한 주당 백만 원을 호가하며 1억 원 상당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 소나무들을 80세가 될 때까지 20년 이상 키우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잠재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신발을 신고 활동하면서 결심하고, 또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단다. 그래서 지금 여유 있을 때 정원을 잘 관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정원을 가꾸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80세까지 강사생활을 한 후에는 무엇을 할까? 박 교수는 이미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 놨다고 귀띔했다. 박 교수의 시골 전원주택의 뜰은 길이가 80여 미터에 이를 만큼 널찍하다. 이곳에 정원을 가꾸고 여러 개의 테이블과 의자를 갖춘 노상카페를 만들 계획이다. 아울러 (돈을 버는) 진정한 프로 바리스타가 될 준비를 미리 해 놓을 예정이다. 또 소공동에 소재한 수재양복 장인을 찾아 수백만 원짜리 멋진 양복을 장만해서 멋진 노신사 바리스타의 포스를 풍기며 카페에서 손님을 맞이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박 교수에게 “당신이 100세까지 산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데 만약 그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떡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100세까지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해 인생설계를 하고 살다가 하나님이 ‘자네 이제 그만 내게 오시게’라고 하신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행복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고 답할 거란다.
또 최근에는 앞으로 20년 정도 세월이 지나면 인간의 수명이 120세에서 150세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러한 경우에도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그것이 현실이 됐는데 그때까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이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그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5년, 10년, 20년, 30년 뒤의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하고 있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설렘이야말로 행복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데, 그저 성공만한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내가 장군까지 지내면서 나름대로 성공한 군인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역 후에 시골에 내려와서 내가 행복한 일을 함으로써 비로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서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인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박 교수는 군 생활과는 전혀 반대되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박 교수는 ‘행복 리더십’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결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친구나 후배들이 박 교수를 찾아왔을 때, 그가 소나무 묘목을 키우고 장작을 패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변화돼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리더가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직원들 역시 변화되면서 상호간에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등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프로필)박상묵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
-학력
공군사관학교 졸업, 경제학 박사
-경력
현) 가야산 오메가-3 영농법인 대표 
공군교육사령관
국방대학교 부총장 
한미연합군 사령부 정보부장
공군 전투비행단 단장

- 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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