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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현장 - 청곡 김시영의 삶]“흙의 조화는 신이 결정”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나는 꽃’ 흑자 연구 외길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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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5호 왕진오⁄ 2014.02.10 14:15:02

▲롯데갤러리 전시장에 함께한 김자인, 김시영, 김경인 부녀(좌측부터) 사진 = 왕진오 기자

[서울=CNB]왕진오 기자= “불과의 싸움에서 이긴 줄 알았죠. 하지만 1300도가 넘는 화염과 유약 그리고 흙의 조화는 신이 결정을 해주는 것 같네요” 고려시대 이후 한국에서 맥이 끊긴 유일한 흑자도예가, 청곡 김시영(56)이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세상을 향해 던진 말이다.

그는 1989년 자신의 고향이자 조선 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가마를 짓고 3만 시간 이상 불을 때며 경험한 기억을 갖고 흑자 만들기에 투신한다.

300여개 이상의 가마를 지으며 다양한 실험을 거치기를 십여 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의 재현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천목을 완벽히 재현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그만의 독특한 색상을 창작해 세상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빛깔과 무늬를 불로 만들어 낸다. 검은 도자기 모두를 흑자로 오해하기 쉽지만, 진정한 흑자는 검은색이 포용한 다채로운 색상이 ‘요변(窯變)’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김시영은 그 색상을 불러내는 불의 마법을 부린다.

▲김자인, 청자슈즈2, 2012


현재 우리나라에 흑자만을 전문적으로 고집하며 작업하는 작가는 청곡 김시영뿐이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 선생은 1997년에 가평요 흑유자에 바라는 마음에 “학구적이고 수도자의 자세로 작업하는 김시영이 만들어내는 흑자를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나는 꽃들과 같다’고 말하며 그가 공학도 도예가이기에 흑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분야의 최고 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로 1999년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는 그의 찻잔 하나가 100만 엔(약 1000만 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흑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청자나 백자, 분청을 작업하며 흑자 작업을 조금씩 시도하는 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1300도 이상의 고온 소성과 예민하고 미세한 불의 변화로 도자의 표면이 안개같이 캄캄한 빛이었다가 오색찬란한 영롱한 빛으로 바뀌기에, 수차례 실패를 거치며 흑자 외길을 포기한다.

▲김시영, 요변천목다완, 13x5.5cm


김시영의 흑자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흑자의 역사를 밝히고 미래의 아름다움을 이끌어갈 도자기임에 충분하다. 미래를 이끌어갈 도자기라는 사명감 때문에 그의 어깨는 무겁다.

전통에만 머무를 수 없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빛깔과 형태를 찾아 헤맨다. 쓰임이 있는 공예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도하던 그는 도자회화와 도자조각으로 작업의 영역을 확대해간다.


고려시대 이후 맥 끊긴 흑자, 두 딸에게 전수

조소를 전공한 두 딸 김자인 (이화여대 조소과 졸, 28), 김경인(서울대 조소과 재학, 24)도 아버지의 장인정신과 빛깔을 전수하고 있다. 산악부 출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배낭을 메고 흙을 채취하기 위해 아빠와 함께 가평의 이 산 저 산을 누볐다.

미술사에 있어 공예와 다른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녀들이지만, 아버지의 작업은 숭고이자 안타까움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의 심판을 받아야 태어나는 김시영의 흑자는 삶의 집약체가 된 것이다.

그림 조각, 퍼포먼스 작업을 펼치는 큰딸 김자인에게 흑자뿐 아니라 도자기는 아주 귀중한 존재로 각인되어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청자하이힐의 작업에서 발전해 숭고함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빛깔을 담은 구두를 선보인다.

▲김경인, 서가흑유사과, 9x8cm


작은 딸 김경인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흑자의 빛깔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김시영 흑자를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앙증맞은 사과 모양 등의 조형물로 재해석된 작품을 선보인다.

두 딸들이 자신의 고행과도 같은 여정에 동참한 것에 대해 김시영은 “어린 시절부터 작업실에서 흙을 만지고 자라난 이들이기에 익숙한 것 같다. 또 내 작업의 여정이 현실에서 덜 알려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것 같았다.”며 “세상 이치에 밝은 유행보다는 멍청해보이듯이 답답한 흑자의 길을 걷는 것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이들의 작업이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아버지로서의 애틋함을 드러냈다.

2월 5일부터 2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진행되는 ‘흑유명가 가평요전-검은달항아리와 그 이후’에서는 김시영의 초기작부터 흑자 40여 점과 흑자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2세들의 작품 30여점 등 7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의 흑자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이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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