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따스해졌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골프 마니아들의 가슴은 또 한 번 뛴다. 정문을 지나 가로수 길을 질주하면서도 눈은 여전히 골프장 주변의 페어웨이를 훑으며 그린 한가운데 머문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의 경쾌한 변주처럼 봄 하늘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마니아들의 골프잔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첫 티박스에 서서 놀라운 베스트 샷을 쳐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저 멀리 먼 산과 페어웨이를 바라본다. 오늘은 동반 친구가 미모의 여자 프로까지 모셔온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겨우내 움츠렸던 몸은 무겁고 허리는 반 밖에 돌아가지 않는 상태로, 스윙은 연거푸 헛스윙에다 뒤땅이 나오기 일쑤다. 그립을 잡는 손은 헛돌고 은근슬쩍 구찌를 넣는 동반 친구의 말에 흔들리며 볼을 치자마자 헤드업이 돼 버린다.
실전에 나가서는 최고의 샷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의 기본이 아닌가. 경력 십년! 이제 언더파를 치고도 남을 때다. 만약 미모의 프로 앞에서 언더파를 치면, 입이 떡 벌어지게 멋진 저녁을 쏘면서 그녀의 칭찬을 독차지할 것이 기대된다.
잘생겼다. 실력보다는 부러움을 살 수 있는 매너와 에티켓으로 존경을 유발하는 대기업 샐러리맨 김 부장은 더욱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라운드 중에도 다짐을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연습장에서 일주일에 세 번과 겨울 동계 태국 전지훈련 4박5일에서 간간히 전문프로의 원 포인트 레슨까지 곁들인 연습 스윙을 통해 갈고 닦은 노하우로 매끄러운 스윙 템포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진다. 더구나 새로 장만한 아이언에 대한 기대도 크다.
첫 홀부터 아부의 인사를 곁들인 캐디가 호들갑을 떨며 내기는 안하느냐고 부추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반 친구가 “세 홀 지나고 몸이 풀리면 시작하자”며 다독인다.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는 ‘내기 없는 골프는 마누라와 추는 블루스와 같다’는 비유로 내기 없는 골프의 허전함을 대변하듯 본격적인 긴장이 유발된다.
내기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두 홀 째, 김 부장은 그린 위에서 보기 좋은 페어웨이 피칭 샷으로 버디까지 이어진다. 곁에서 지켜보던 미모의 여자 프로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응원한다. 동반 친구 둘은 잠시 긴장어린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내기 골프가 시작되는 3번 홀, 모두가 긴장으로 티박스에 선다.
그러나 아뿔싸! 공은 오비지역에 안착되고 만다. 캐디의 안타까운 비명이 김 부장의 가슴에 비수로 날아온다. 결국 그날 라운드에서 김 부장은 새 봄의 첫 라운드가 전 홀 버디발이 더블보기로 끝나고, 내기에 흔들리며 장갑을 벗은 최종 홀에서는 꼴찌를 면치 못했다. 동반 절친 친구는 연습벌레 김 부장의 최후의 모습을 비아냥거리며, 자신처럼 겨울에는 그저 동안거로 몸을 쉬어둬야 한다면서 놀렸다.
미모의 여자 프로는 식사자리에서 김 부장의 스윙에 대해, 새로운 아이언 클럽 선택의 거리체크 중요성과 몸 스윙 때 보여주는 샷의 환상적인 스윙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실수를 줄이는 샷을 하라고 조언했다. 언더파를 치겠다는 치기어린 각오로 낭패를 당한 김 부장은 불그스레 취한 채,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제 본격적인 골프 잔치의 계절이다. 봄 날 새로운 잔치를 위해 연습은 올곧게, 새 클럽의 거리선택은 미리 체크하고, 내기는 즐겁게 한 타 한 타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골프의 본질적인 즐거움과 함께 고유한 취미를 맘껏 만끽해보자.
- 손영미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정회원 (극작가/서울아트스토리)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