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막강한 실력의 정치인에게 ‘골프문화토론회’를 공동개최하자고 제안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보좌관을 통해 전하는 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골프 좋아하고 실력 출중하다는 거 세상이 다 알아요. 그런데 골프행사를 하면 기자들이 가만 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양반 대답이 이랬다면 백번이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내가 골프를 몰래 해요. 주로 나에게 부탁을 해오는 사업가들이 비용을 대주죠. 난 멀리건도 잘 써요. 안 볼 때 볼터치도 잘 하구요. 그런 내가 골프문화 향상을 위한 토론회를 무슨 낯으로 하겠어요!”
수도 없이 되뇌이는 말이지만, 골프는 긍정과 부정 양면성의 모순을 안고 있는 희한한 스포츠다. 아니 사실은 ‘한국의 골프는 요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게 정치 쪽에서는 더욱 이상하게 인식되고 있으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정치에서 골프는 도깨비’같은 것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이르면 골프의 대중화는 필연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의 교양학부에 ‘골프과목’이 설치된 게 이미 20여 년 전이다. 이후 소득도 더 높아졌으며, 골프장과 골퍼도 해마다 늘고 있는데, 한국에서 골프가 완전한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그런 골프가 IMF의 시름을 잊게 해준 LPGA의 박세리나 세계 여자골프사에서 가공할 기록을 쌓은 박인비 등의 힘으로 국위선양을 단단히 하고 있는데, 왜 여전히 말이 많고 계속해서 계층 간의 위화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 일에 대해 통감해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도대체 골프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일까? 민간인들이 골프장에서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정치인처럼 대형 사고를 치는 일은 없다. 골프장 난동에 어김없이 정치인이 끼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비사를 아시는지? 최근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신당합당도 쇼킹하지만,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크게 경천동지를 시켰던 대정치퍼포먼스는 1990년 1월 6일 있었던 민정, 민주, 공화 3당의 합당이었다. 국내 정치사에서 골프회동을 통해 만들어 낸 ‘대마왕 결실’이었다.
정치인들은 지금도 골프장의 주고객이다. 단지 안하는 척만 할 뿐이다. 골프가 정치 활동의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골프정치’를 가져온 것 일까? 총칼의 위협이 상존했던 1970년대의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국내 정치는 술집에서 주로 이뤄지는 ‘밀실 야합’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국가나 각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은 극소수 실권자들 간의 비밀회합으로 결정됐다. 당시 정치인들이 밀실 대화 장소로 즐겨 찾던 곳은 삼청각, 대원각CC 아니, 요정이었다.
한 중견 정치인이 말했다. “새벽까지 술집에서 여자들까지 있는 몽롱한 상태보다는, 밝은 대낮에 맑은 정신에서 자연을 벗하며 하는 협상이 훨씬 생산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하지 말라고 하니, 그게 역설적으로 더 하고 싶도록 부추기더라니까!” 그래서 정치인들이 골프회동을 선호한다나! 게다가 골프는 1인당 30만 원 정도의 비용이면 충분히 접대가 가능해 받는 쪽이나 해주는 쪽이나(그들에게는 껌 값 정도일 테니까) 경제적으로도 술자리 보다 부담이 적어서일까.
한국정치가 술에서 골프로 옮겨진 것은 확실한데, 그들이 갖고 있는 골프문화, 그 신성함이 제대로 정립되었는지는 미지수인 것 같다.
-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언론학박사)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