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운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 문화예술인들 ‘용사모’ 결성 후원키로
(CNB=왕진오 기자) 강연균, 강요배, 강홍구, 권순철, 권용택, 김건희, 김서경, 김영수, 김영중, 김운성, 김정헌, 김종례, 김준권, 김지원, 김평준, 노원희, 두시영, 류연복, 문영태, 민정기, 박불똥, 박영숙, 박진화, 박흥순, 손장섭, 송창, 신학철, 심정수, 안규철, 오윤, 윤석남, 이명복, 이종구, 이철수, 임옥상, 정동석, 정인숙, 주재환, 최민화, 홍선웅, 황세준, 황재형 이들 43명은 미술계에서 민중미술계열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다.
1980∼90년대 미술계에서 큰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 한 사람을 위해 모였다. 바로 ‘용태 형’ 때문이다.
그들의 애칭으로 불렸던 ‘용태 형’은 늦은 밤 인사동 골목에서 “니들 차비 있나?” 라며 술에 취한 지인들의 돌아갈 차비를 일일이 챙긴 것을 떠올리게 해주는 김용태(68)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사회 참여를 시작한 김 전 이사장은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사무국장, 민예총 초대 사무처장을 지내며 주로 일꾼역할을 도맡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백기완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1993년 북한 정영만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과 최계근 중앙미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코리아통일미술’전을 성공리에 펼치며 남북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늦은 밤 술에 취한 친구와 후배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로 ‘니들 차비 있나’며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며 돌아갈 차비를 챙겨주는 것이다. 용태 형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 ‘용태 형’이 간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선후배들이 뭉쳤다. 이제는 이름 석 자만 불러도 알 만한 사람들인 ‘용태 형’의 선후배들이 나서 김용태를 사랑하는 모임 ‘용사모’를 만들었다.
이들의 사랑은 마침내 2주 만에 원고료 청탁과 짧은 마감 시간 그리고 손에 붕대를 감은채로 한 달 만에 책을 만들어 냈다. 그와 교류했던 미술작가와 문학가, 평론가, 교수, 출판, 언론인, 문화행정가, 만화가들의 글이 모인 것이다.
작은 키에 혁대를 배꼽까지 올려 입은 채 두 주먹을 쥐고 목청껏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을 떠올리며 책 제목도 ‘산포도 사랑, 용태 형’(현실문화)으로 지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김윤수 민예총 초대 공동의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 구중서 문학평론가, 임옥상 화가 등 김 전 이사장과 40여 년 인연을 맺어 온 문화예술인 46명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발간하고 전시기획을 맡은 독립큐레이터 전승보씨는 “모두 원고료도 받지 않고 원고 청탁을 한 지 2주 만에 글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가나아트서 무료 제공, 경매수수료 안 받기로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을 그림으로 그려낸 민중화가 강요배는 책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거울이라면 다면경을 가진 사람”이라며 “인정 따라 낮고 넓게 흐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유홍준 교수는 “주둥이로만 민주화운동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용태 형 앞에서 맥을 못 췄고, 먹물 냄새가 나면 막걸리 주전자가 날아갔다”며 “그래도 될 정도로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작가 임옥상은 “용태 형은 우리가 나름 화가라고 겉멋이 들었을 때 그런 것 없이 마치 일꾼 같았다”며 “그런 모습 때문에 모두가 격의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오로지 ‘산포도 처녀’하나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며 “작은 키에 바지춤을 들어 올리며 챔피언벨트를 찬 권투선수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열창할 때는 다들 박수치기보다 배꼽을 잡지 않을 수 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용사모’는 오는 26일 오후 5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책 출판 기념회와 함께 작가 43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은 ‘함께 가는 길’ 전시회를 연다.
강요배, 권순철, 김인순, 김정헌, 민정기, 신학철, 임옥상 등 ‘용태 형’을 기억하는 작가들이 흔쾌히 작품을 내놨다. 특히 오는 30일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사랑의 힘’ 경매를 열어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35점을 출품한다.
전시회와 경매 장소는 모두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이 무료로 제공했다. 김 전 이사장이 지금은 폐간된 격월간 ‘가나아트’의 초대 편집주간을 맡았던 인연에서다. 이 회장은 경매 수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 수익금은 용사모기금과 김 전 이사장의 치료비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승보 큐레이터는 “시대적 환경을 외면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개인적 불이익이나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공동체인 사회를 위한 발언한 작가들의 작품”이라며 “전시회와 경매를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자리에 힘을 보태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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