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문화 칼럼]경복궁 미술관 거리는 ‘한국의 뮤지엄 마일’ 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를 꼽으라면 뉴욕이 맨 앞쪽을 차지할 것이다. 그 뉴욕이 자랑하는 명소는 한 둘이 아니겠지만, 대표적으로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센트럴 파크 근처에 위치한 뉴욕의 대표 미술관과 박물관이 줄지어 모여 있는 약 ‘1마일의 뮤지엄 거리’를 말한다.
뉴욕 뮤지엄 마일엔 200만 점 이상의 수집품을 자랑하는 세계 4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해, 독특한 건물 디자인으로 사랑 받는 ‘구겐하임 미술관’, 세계 최대의 ‘유대인 미술품 박물관’ 등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과 유명 갤러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매년 6월 둘째 주 화요일엔 이 거리의 9개 문화원이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을 개최해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부터 정부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영화, 공연, 미술관ㆍ박물관 등을 특별히 할인된 가격이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기조 중 하나로 내건 ‘문화융성’의 대표적인 실천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이 사업을 통해 문화를 향유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월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객 수는 4633명, 덕수궁관은 5327명을 기록해 평시 대비 각각 37%와 84%가 상승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의 문화가 있는 날이었던 26일(수)에는 덕수궁관에 하루 동안 8233명이 모여들며 일일 관람객 수로는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선 주변에는 경복궁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전시 공간들이 즐비하다. 특히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가 인사동에서 출발해 삼청동을 거쳐 사간동의 ‘경복궁길(미술관의 거리)’까지 밀려온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우리나라에도 뉴욕의 문화명소인 ‘뮤지엄 마일’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하고 들뜬 분위기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갈 길이 멀다. 지난 주말 간만에 사간동 ‘미술관의 거리’에 갔다가 낯 뜨거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무리의 외국인이 거리에 세워진 표지판과 손에 든 지도를 번갈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황을 확인해보니 더욱 황당하고 난감했다. 그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주변의 갤러리들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불과 수십 미터 앞에 세워진 안내 표지판은 방향도 헛갈릴뿐더러, 이미 10여 년 전에 이사 간 갤러리와 옥션사도 그대로 표기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문화융성은 이벤트로 만들어질 수 없다. 문화는 강요나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자생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문화의 내재된 힘이 솟구칠 수 있다. 제대로 된 소장품이 없는 미술관은 속 빈 강정과 같듯, 문화를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정부의 노력이 헛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재점검해봐야겠다. 오늘 바로 새로운 문화1번지 입구의 ‘구식 표지판’부터 바꿔 놓자!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박현준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