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미술계, 반세기 만에 제주4·3 진실을 캐다
‘오끼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 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 전 개막
▲고승욱, 말더듬-노꼬메오름, 사진, 120x80cm, 2013
(CNB=왕진오 기자) 2014년 제주 4.3미술제가 단순히 전시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역사를 만나 빚어내는 변주로서의 미술이 역사적 진실을 캐기 위한 방편으로 탈바꿈한다. ‘오끼나와, 타이완, 제주사이; 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전이 4월 1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4.3 희생자의 억울한 영혼을 미술의 언어로 씻김 하는 이번 자리는 살림으로 표현된다. 모든 억압자와 권력자, 지배자에 의해 행해진 죽임에 맞서는 살림은 그들의 가해적 힘을 견디고 저항하는데서 비롯된다.
살림의 복권은 죽임을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살림은 굳은 신념이나 믿음 혹은 결코 쉬어 본 적이 없는 희망과 같다. 살림의 미술적 제의는 굿판이겠지만, 그 주검을 살림으로 바꾸는 장치는 바람도 물도 아닌 불이란 얘기다.
▲홍성담, 제주4.3고, 195x4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4
4.3은 그동안 죽은 역사의 죽임운동이었다.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의 언어이자 상처였다. 1978년, 현기영은 북촌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쓴 ‘순이 삼촌’을 통해 4.3을 알렸지만, 그 후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는 ‘순이 삼촌’에서 “그 죄악은 30년 동안 여태 단 한 번도 고발 되어본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4.3미술은 1947년으로부터 47년이 흐른 뒤에야 탐라미술인협회를 통해 시작됐다. 작가들에게 있어 이와 같은 역사의 공백은 4.3의 실체에 다가서는데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무한한 기억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뿌리 깊게 인식된 기억은 쉽게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기억은 지속적으로 우리 삶의 역사를 흔들며 지배한다.
▲홍성담, 제주4.3고, 195x4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4
그러나 침묵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된다. 기억에 대한 끊임없는 짓눌림과 파괴책동, 극도의 불안감 조장, 자의적 묵계와 기억 삭제는 모두 기억의 자살을 강요하는 총구들이며, 함구와 침묵의 실체들이기 때문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탐라미술인협회 작가와 홍성담, 조습, 고승욱, 이샛별, 믹스라이스, 이윤엽, 김대중, 박영균, 박이창식, 오끼나와, 타이완 작가 등 40여명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에 남아있는 당시의 흔적을 찾아 제사를 지내며, 감성적인 작품이 아닌 직접 경험을 통해 당시를 기억하려 했다.
‘무늬만 커뮤니티’(김월식, 곽동열, 박영균, 이아람)는 2개월 여 동안 제주의 산과 들, 바다를 현실적으로 마주하고 제주의 2014년에 대해 획득한 인상적 풍경과 그 풍경의 무늬에 존재하는 삶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보고서 형식으로 영상에 담았다.
억울한 영혼 씻김하는 주제는 ‘살림’
이들이 펼치는 ‘NOWHERE PROJECT’는 되풀이 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NO WHERE(어디에도 없으면서) 이거나, NOW HERE(지금 여기에 있는) 혹은 그 반대로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영상에는 제주 4.3항쟁과 같은 아픔들을 겪은 네팔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히말라야의 나라인 네팔은 세계 12위권의 최빈국이다. 영국과 미국의 비호를 받은 국왕의 독재에 항거해 봉기한 왕정시절 못지않은 부패된 정치로 더욱 피폐하고 빈곤한 삶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4.3 피해자들과 무장대들이 한라산으로 숨어들었듯이 많은 네팔인 들이 히말라야 산 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가 마오이스트가 됐다. 특별한 이념적 갈등과 성찰이 아니라, 살기 위해 숨어들었던 히말라야는 국왕의 군대를 피하고 국왕의 맞설 힘을 기르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지형이었다.
이 과정에서 1만 9000명으로 추정되는 네팔인 들이 군대와 마오이스트들의 전쟁에 희생된다. 무늬만커뮤니티는 지난 10년간 네팔의 여러 곳에서 만난 네팔인 들이 너무나도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지만 제주와 마찬가지로 아픈 기억과 슬픔을 갖고 있는 동시대의 친구들이었다는 것을 기록했다.
▲무늬만커뮤니티, NOWHERE PROJECT-prologue, 싱글채녈, 1시간 5분, 2014
추정 사망자만 3만 여명, 한국전쟁 이후 많은 이들이 희생된 비극, 6년에 걸친 동족상잔의 비극은 제주 전역에 유적지 수백 곳을 남겼다. 66년이 흐른 2014년 4월 3일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희생자 추념식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제주 4.3 미술제도 단순히 전시의 규모를 확장하는데 머물지 않고, 새롭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동안의 4.3 미술제와 비교해 규모와 내용면에서 동시에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기존 탐라미술인협회 내부 회원작가들 뿐 아니라 제주출신 작가들의 참여기회 확대, 전국의 작가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평화를 주테마로 하는 미술제로 그 영역을 넓혀 나가, 아시아 유수의 미술제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
- 왕진오 기자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