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요술 같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판타지 드라마가 유행이다. 최근 종영된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라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시간을 정지시키는 놀라운 초능력을 선보인다. 외계의 별에서 지구로 떨어진 주인공은 400년 동안 지구에서 혼자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외계인에게는 지구의 시간이 거슬러 흐르는지, 그는 전혀 늙지도 않은 채 빛나는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자신이 정지시킨 시간 안에서 공간 이동도 하는 기상천외한 묘기도 발휘한다.
누구라도 한밤중에 그리움이 북받친 상태에서 ‘보고 싶어 죽겠노라’는 연애편지를 써서 전송을 해버리고는, 아침에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별그대에서의 외계인 역시 황망 중에 마음을 털어 보이는 낯 뜨거운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는 불현듯 후회를 하며,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건너가 상대가 읽기도 전에 그 메시지를 지우는 짓을 한다.
며칠 전 댄스대회에서 왈츠 시범을 보이던 한 쌍의 남녀가 시간을 멈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몸짓이 스루어웨이 오버스웨이(throwaway oversway)의 정점에 이르러 있었는데, 남성이 리드를 중단하고 그만 여성의 몸을 놓아버렸다. 본디 왈츠란 남성의 리드에 따라 여성이 반응을 하는, 그러면서 남녀가 짝을 이루며 추는 춤이다. 남성의 리드동작이 없으면 여성의 반응 동작도 없어야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움직임을 멈추도록 리드하면, 사진의 한 장면처럼 동작의 멈춤이 일어나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리드에 따라 몸통을 좌우로 꼬아 팔과 다리를 한껏 쭉 펴서 늘렸고, 머리는 최대한으로 뒤로, 아래로 젖혀져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거의 알파벳 C자의 형태로 휘어져 동작과 숨까지 멈춘 여성을 플로어에 세워둔 채 남성은 여성에게서 떨어져 나와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청했다. 우레처럼 쏟아지는 갈채 속에 남성은 홀로 플로어를 한 바퀴 돌았다. 10초쯤이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성은 좌우로 꼬아지고 상하로 젖혀진 여성의 몸을 풀어, 다시금 볼륨이 높아진 음악에 맞추어 플로어를 누볐다.
골프스윙이란 팔과 클럽에 의한 원운동으로서, 그 궤도에 있는 볼을 클럽헤드로 타격하는 수동동작이다. 멀리 정확하게 공을 보내기 위해서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필수다. 그리고 강한 임팩트를 내기 위해서는 원심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회전운동을 하는 몸통의 꼬기와 풀기를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꼬기와 풀기 사이에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순간 멈춤이 있다. 아무리 초능력을 지닌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 하더라도 순행과 역행을 물 흐르듯 연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댄서라기보다는 골퍼다. 그래서 댄스를 보면서도 골프를 생각한다. 스윙의 시작인 테이크 백에서 물 흐르듯 유연하게 몸통을 회전해 백스윙의 정점에 이르면, ‘별에서 온 그대’처럼 시간을 반 박자만 붙들어두자.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다운스윙의 풀기 동작은 가속이 붙으면서 강하고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멈춤이 없다면 움직임도 없고 움직임이 없다면 멈춤도 없는 것처럼.
그 다음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응축된 힘의 폭발이 선행하는 임팩트, 탄환처럼 목표를 향해 나르는 공….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