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만물 향기와 빛으로 깨어난 봄, 바야흐로 사월이다. 꽃들은 앞 다퉈 들판을 찬미라도 하듯 샘솟듯 피어났다. 창문을 열면 앞산 머리위에도, 거리 한복판 도로위에도 벚꽃으로 눈이 시리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비단 윌리엄 워즈워드의 젊은 날의 나탈리 우드와 워렌비티의 영화 ‘초원’의 들판을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는 봄의 찬연함으로 때로는 젊은 날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는 첫사랑이 그리운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난날의 힘차고 푸른 청춘의 때가 잔잔히 아쉬워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생동하는 봄은 마치 젊은 날의 청춘처럼, 화가의 수채화처럼, 화려하고도 우아하다. 나뭇가지에서는 초록 잎이 끝없이 몸부림치며, 수분을 빨아들이며 출렁거린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은 농익은 햇빛에 푸름을 더해간다.
오늘도 김 부장은 사무실 블라인드 창 너머로 골프연습장의 푸른 망을 훑는다. 근무시간 낮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은 줄곧 화려한 드라이브 샷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언더파를 치던 때를 다시 꿈꾸어 본다.
며칠 전 필드에서 친구가 데리고 온 미모의 프로 앞에서 보기 좋게 참패한 수모를 만회하기 위해 제대로 벼르던 김 부장은 새로운 각오로 역전을 준비 중이다. 그 타깃은 ‘골프의 꽃’이라는 화려한 드라이브로 첫 티 박스에서부터 기선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들의 꽃무리 속에서 자신이 친 드라이브 샷이 우아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페어웨이에 안착한다. 화사한 여자프로의 붉은 볼이 미소로 번진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몸 템포와 컨디션은 최고의 샷 포즈다. 그러나 김 부장은 드라이브 샷을 머릿속으로 그려만 봐서는 영 샷 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사무실 한쪽에서 샷 동작을 일삼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실내에서 빈 스윙을 해도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 샷의 구분 동작이 쉽지 않다. 급기야 급한 업무를 처리한 후 연습장으로 향한다.
드라이브 샷은 무엇보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어느 프로의 말을 상기하며, 봄 날 가장 멋진 샷을 날리기 위해 티샷을 하는 김 부장의 눈은 홀인원이라도 날릴 기세다. 언덕 위를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라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공의 위쪽을 맞춰야 한다는 것 외에도, 볼을 치려하지 말고 클럽헤드에 맡기라는 것도, 손이 공보다 뒤쪽으로 빼라는 것도 김 부장은 마치 영화 속 필름처럼 기억을 되살려 본다. 거리를 내기 위해서 스윙은 가파르면서도 임팩트 때 스윙 스피드를 강하게 해준다. 드디어 멋진 샷이 나왔다. 김 부장은 만족한 표정으로 다음 샷을 다듬는다. 두 번, 세 번, 그립은 너무 강하지 않게, 엉덩이가 지나치게 뒤로 빠지지 않게 전체적인 조화와 리듬 템포를 맞춰 나간다.
특히 드라이버 샷을 연습장에서처럼 필드위에서는 많이 칠 수 없으므로, 오늘은 전체적인 쿨 바디 샷 감으로 몸의 균형과 디테일을 잡아보기로 했다. 먼저 드라이버 샷을 가볍게 배꼽 높이로 몇 번의 빈 스윙으로 몸을 풀고, 며칠 전 라운드 시 그린 위에서 작은 근육으로 숏 게임으로 마무리된 샷 감을 되돌려 큰 근육을 이용해 팔의 유연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드라이버스윙 시에는 체중 이동이 머리, 어깨, 허리, 골반, 다리, 팔 등으로 모든 것들이 연습대로 짜인 각본대로 움직여 줘야 된다. 또한 코킹을 안 풀고 끌고 내려오면서 오른쪽 손이 오른쪽 바지주머니를 스쳐지나가듯 할 수 있어야 한다.
점점 흥에 겨운 김 부장은 내일 승부 전 라운드가 한층 더 설렌다. 다시 한 번 ‘땅’ 단순하게 그리고 공격적으로 롱 샷! 김 부장의 드라이브 샷은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아뿔싸! 볼은 골프장 그물망을 뚫고 건물 담장을 넘어가고 있다. 홈런이다. 미소를 머금은 김 부장의 머리위로 벚꽃이 흩날린다.
- 손영미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정회원 (극작가/서울아트스토리)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