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차대영 작가]순백의 신성한 빛
인왕산전(展) 통해 한국인의 담박한 본성과 겸양지덕의 세계관 표현
인왕산은 조선 500년 역사를 태동케 한 진산이다. 서울을 수호하고 대표하는 산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영감을 얻고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인왕산은 아포칼립스적 암울했던 과거와 당쟁으로 얼룩졌던 굴절의 아픔을 지켜보았다.
오늘, 대립과 혼동의 시대에 바라보는 인왕산은 희망의 미래를 꿈꾼다. 인왕산은 나 자신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내일이다. 인왕산이 꿈꾸는 용의 승천은 ‘함께 삶’의 존재 방식, 화합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 만드는 더 나은 미래다.
차대영(57) 작가는 세 개의 시퀀스로 연결되는 절대 전능의 심판자이며 관찰자를 표상하는 호랑이의 눈을 ‘인왕산전(展)에 담았다. 일편단심(一片丹心), 선(善)의 세계’로 시작하여 ‘인정의 꽃밭, 선(仙)의 세계’와 ‘장무상망(長毋相忘), 선(禪)의 세계’ 연작들로 이어지는 차대영 작가의 개인전은 작가의 의식의 지평과 겸재 정선,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융합이 숭엄한 통섭의 장을 이루고 있다.
독특한 미감을 구현하는 순백색의 신성한 빛은 차대영 작가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다. 한국인의 담박한 본성과 감성, 겸양지덕의 세계관은 그가 표현하는 색채미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6월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개인전에는 백색 바위와 붉은 나무의 색채 대비가 더욱 과감하고 강렬하다. 색채의 신묘한 감응이 주는 이 파격적인 효과는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웅장한 산세가 동양화의 흰 여백과도 같이 한층 더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데 일조를 한다.(중략)
궁궐이 잘 보이는 인왕산 치마바위에 서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흔들던 붉은 치마. 펼쳐진 치맛자락이 이렇게 붉었을까. 하루아침에 폐비가 되어 쫓겨난 한 여인의 애닲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인왕산의 치마바위 전설처럼 붉은 마음, 흰 바위는 일편단심의 비장한 사랑이다.
▲인왕산, 162.2x130.3cm, 2014
차대영 작가의 그림에서 흰 바위 위의 나무는 부감 법으로 내려다 본 시점을 감안하더라도 여타 이러한 작품에서 보여주는 나무를 비교할 때 훨씬 더 작아서 작품 앞에서 감상자는 신비로운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시점은 더할 나위 없이 높아지고 장면은 한층 더 기묘한 풍경으로 흐른다. 시야에 가득한 공간은 깊이를 알 수 없고 넓이도 짐작하지 못할 심연 속에서 이미 신선이 되고 구름으로 화한다.
예술 작품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의 고백이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며 한 조각 붉은 마음, 일편단심이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만약 인생의 고난과 비통함을 겪지 않았더라면 미술사에 길이 남을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을까. 전통에 덧대고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간 겸재와 추사의 청출어람의 도전과 용기에 관한 오마주는 차대영 작가의 작품 면면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색채의 신묘한 감응이 주는 파괴적 효과
토산이 암산을 감싸서 음양조화를 이루게 하거나 토산과 암산을 마주보게 하여 음양을 조화시켰던 겸재 정선의 음양철학은 오늘날 차대영 작가의 토산-인왕산, 암산-삼각산으로 다시 만난다. 음과 양의 합일이야말로 생명과 축복의 원천이고 생동의 근원이다.
바위 위의 나무 한 그루는 바위는 여근으로, 소나무는 남근으로 표현하고 운우지정이 포착된 장면의 상징성을 표현한 것이다. 노자가 언급한 영원히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 현묘한 암컷과 용틀임을 하며 생성하고 온 몸이 다 탈 때까지 발산하는 불처럼 확장하고 무성한 잎을 틔우는 순환의 생명력, 나무 한그루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중략)
‘장무상망(長’毋相忘)’ 연작은 화면을 위아래로 나누고 윗부분에 나무 한 그루, 하단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새겨 넣었다. 지평의 융합은 작가와 감상자의 관점을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하지만 고통을 동반하고 있다.
‘세한도’의 까칠한 붓선의 효과를 긁어 표현한 것은 고금의 서화를 날카롭게 관철하는 필력으로 단번에 칠하여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세한도’의 본질이다. 또한 숙명과도 같은 통섭의 아픔을, 무덤과도 같은 유배지와 영화로웠던 삶을 일체시켜야만 했을 추사에게 그림의 이치와 선(禪)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세한도’의 붉은 인장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말자는 우정의 약속이다. 차대영 작가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의 작품들마다 네모진 인장 속에 표현한 깜찍한 자동차는 작가의 성(姓)인 車를 모티브로 작가가 풍기는 잔잔하고 소소한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예술작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 보이지 않을수록 더 알 것 같은 것이 차대영 작가의 예술에서 찾을 수 있는 묘미다. 수줍게 떠오른 희미한 초승달, 자잘하게 찍어놓은 나뭇잎의 조각들, 작고 연한 것들의 꼼틀거리는 움직임이 솜사탕처럼 그러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생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순수한 만남처럼 아스라하지만 이 또한 사랑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랑하는 기쁨인 것일까. 예술이 사랑의 고백이라면 차대영 작가의 고백은 첫사랑의 고백처럼 풋풋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 김성은 미술평론가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성은 미술평론가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