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 이탈리아 대표 디자이너 엔조 마리]나는 왜 디자인 하나
디자인 인생 50년, 평생 화두는 ‘디자인 통해 유토피아 전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인 엔조 마리 전.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남을 위해 베풀고 공유하는 윤리를 과정과 결과로 일관되게 풀어내는 엔조 마리(82)의 정교하고 사회공헌적인 디자인은 ‘90%를 위한 디자인’ 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엔조 마리의 작품은 친환경적으로 삼나무를 활용한 가구를 비롯해 교육용 완구 등 다양하다. 소재와 기능을 고려한 생활용품과 객관성과 보편성에 기반을 둔 그래픽 등 각 분야를 아우른다. 그의 50년에 걸친 270여 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지난 3월 21일 개막했다. 오는 6월 21일까지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이간수문전시장에서 열린다.
20세기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을 대표하는 엔조 마리는 디자인 안에 담긴 우리 사회와 삶에 대한 철학으로 더욱 높이 평가받아 왔다. 그의 작품은 ‘디자인 된 사물’이 아니라 디자인의 과정을 통해 ‘사회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 이다.
이와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평생을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디자인’을 실천해왔다. 트렌드에 지나치게 치중해 본질보다 스타일에만 집중하는 편협한 현대의 디자인에 경고를 보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인 엔조 마리 전. 사진 = 왕진오 기자
엔조 마리 디자인은 5개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디자인 자급자족’은 디자인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다. 서울과학기술대학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동대문 시장상인들을 위한 가구 만들기를 진행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도자기공을 위한 프로젝트로서 기계적인 생산만을 하던 도자기 직공들에게 창조력을 발산시키도록 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시된다.
디자인으로 풀어보는 전통과 혁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혁신과 전통’, 엔조 마리 50년 작품을 집대성한 ‘엔조 마리 그의 50년 작업들’ 그리고 엔조 마리와 동고동락한 유명 디자이너 작품 전시인 ‘엔조 마리, 그리고 동시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을 통해 엔조 마리가 꿈꾸는 디자인 유토피아의 단면을 보여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인 엔조 마리 전. 사진 = 왕진오 기자
엔조 마리는 1932년 이탈리아 노바라 지역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4세에 일자리를 찾아 밀라노로 가게 된다. 가난 때문에 정상적인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었던 브레라 아카데미(Accademia di Brerra)에서 문학과 예술을 공부했다. 디자인은 오로지 혼자서 공부했다.
그는 디자인 할 때 “내가 왜 이것을 디자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미 세상에 훌륭한 디자인이 많이 있다면 굳이 그 물건을 다시 디자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디자인에서 형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단지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 가격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형태를 만드는 데 있어서 늘 기본에 충실했고, 쓰임을 먼저 생각했다.
인간이 중심인 자급자족 세상 꿈 꿔
그는 자신의 이러한 디자인 활동을 ‘은유’라고 칭한다. 그의 디자인이 갖는 의미는 디자인 된 물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를 전달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엔조 마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란 인간이 삶의 중심에 있는 자급자족의 세상이다. 비록 오늘날 자급자족 생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메시지는 그의 디자인에 분명히 담겨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인 엔조 마리 전. 사진 = 왕진오 기자
처음에 시각심리학, 지각 구조의 설계, 그리고 디자인 방법론 연구에 심취했다. 이 작업은 이후 그의 작업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단순한 제품 디자이너나 가구 디자이너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 이론가, 예술가, 사상가로 불리는 이유이다.
엔조 마리는 모든 디자이너는 그 자신만의 이상적인 세상의 모델을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디자이너는 대량생산을 위해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물건을 만들어야 함은 물론 각각의 디자인은 유용하고, 목적에 충실해야 하며, 사용되는 소재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왕진오 기자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