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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골프 세상만사]이 찬란한 계절, 놓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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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0호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2014.05.29 08:53:2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에 온 국민이 애도의 격랑에 휩쓸려 우울증을 앓고 있다. 모든 방송국에서는 오락프로그램을 중단했고, 국민들 역시 생활에 웃음과 활기를 주는 유흥놀이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그저 세월호에 관한 슬픈 소식뿐이다.

이런 참담한 시기에 골프라운드를 하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줄을 알면서도, 월례 골프모임에 나갔다.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산이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면서 사상자가 나오는 천재지변의 재난이 닥쳤을 때, 공무원이나 지도층 인사가 골프가 아닌 테니스나 마라톤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비난일색일까. 이런 아픈 시기에, 골프모임이 아닌 축구모임이나 당구대회에 나가더라도 가책을 느낄까. 필자는 양심의 소리를 경청했다.

골프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린과 페어웨이와 카트가 다니는 포장도로를 제외하고, 한 줌이라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샤스타데이지가 피어있었다. 이 꽃은 계절을 느끼게 하는 몇 안 되는 진귀한 꽃이다. 아울러 개화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의 역할을 한다.

가느스름 눈을 떠서 속눈썹으로 햇빛을 걸러본다. 참물처럼 시원달달하게 뺨을 스쳐가는 바람을 폐부까지 훅 들이킨다. 톡 쏘는 풀향과 샤스타데이지의 꽃향을 큼큼 음미한다.

문득 에두아르 마네의 그 유명한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했을 당시에는 ‘목욕’이란 제목이 붙어있었다. 숲을 배경으로 정장 차림의 두 남성, 벌거벗은 여인, 그리고 호수에서 숲의 요정처럼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이 등장한다. 거기에 더해 지천으로 널린 샤스타데이지의 향이 풍겨오고, 이 작품의 바탕이 된 조르조네의 1508년 작 ‘전원의 교향곡’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골프는 자연과 더불어 벗과 함께 즐기는 운동이다. 또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즐길 수 없다. 한국에서 골프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함수율이 낮은 한국의 산악 지대 골프장은 장마철에 산의 토사가 흘러내려 라운드를 할 수가 없다. 천둥번개 치는 날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라운드 할 수 없고, 눈이 많이 오거나 한파에 그린이 얼어도 골퍼는 페어웨이를 밟을 수 없다.

골프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 내장객이 30퍼센트 이상 줄었다고 한다. 골프장 적자는 차치하고라도, 지난해 이맘때는 한 달이면 45라운드를 돌았는데 지금은 그때의 반밖에 못 벌고 있다고 캐디가 울상을 짓는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터예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한 구절이다.

골퍼는 절대로 오래 머무르지 않는 이 찬란한 계절을 놓치면 안 된다. 아쉽게 가버린 세월에 하냥 섭섭해 울지 않으려거든, 햇빛 쏟아지는 풀밭에서 벗과 함께 유쾌한 골프라운드를 즐기시라. 그래야 가슴이 깨질 듯했던 슬픔도 달래질 것이다.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 (정리 = 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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