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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개로 날 듯, 배는 바닥짐으로 뜬다. 좌우 날개가 비행의 균형을 맞춘다면 돌과 모래를 채운 바닥짐은 배의 평형을 잡는다. 안전 항해를 위해서는 충분한 복원력이 생명이다. 기울어져도 오뚝이처럼 중심을 잡고 일어서야 한다. 돛을 펴고 닻을 내리는 건 다음 문제다.
바닥짐으로 예전엔 돌과 모래를 썼지만 요즘은 바닷물을 채운다. 이게 평형수(ballast water)다. 배의 전후좌우 평형을 잡아주고 방향을 정해준다. 사람이 두 다리로 땅을 딛는 것과 같다. 흘수(吃水)는 배가 물에 잠긴 부분의 깊이다. 수면에서 배의 맨 아래까지를 잰 수직거리다. 끽수(喫水)라고도 한다. 배에 있어 평형수는 안전과 생명의 물이다. 부족하거나 넘치면 탈난다.
기울어져도 오뚝이처럼 중심 잡는 건 평형수
세월호 침몰의 치명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평형수 부족이었다. 필요한 평형수를 기준보다 1300t 줄인 680t만 실었다. 부족한 평형수 대신 화물을 고박하지 않고 적재해 순식간에 대형 참사가 났다. 배의 안전과 승객의 생명은 아랑곳 않고 돈벌이에 눈멀었다. 청해진해운이 주범이라면 관피아는 공범이다. 사전 관리감독에 소홀했고 침몰 후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 후 정부의 지원대책은 아쉬움이 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주재 긴급 민생대책회의에서 침체된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해 7조원이 넘는 재정투입을 결정했다. 여행업계엔 150억원을 긴급 지원한다고 했다가 이틀 만에 500억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나오기까지 정작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우선순위가 한참 바뀌었다.
세월호 관련 업종 및 지역의 중소기업, 자영업자 지원대책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희생자 가족들이 갖는 비탄과 상실감을 최우선적으로 치유하는 게 옳았다. 유가족을 위한 생활안전자금 지원은 정부의 대책 이틀 뒤에 나왔다. 피해 가정에 쌀 다섯 가마 값인 85만 3400원의 생활안정금과 가족 1인당 42만원의 구호비를 지급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는 물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금에다 해결책이 미미한 청년실업 문제까지 온통 찬바람이다.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야 불황이고 뭐고 관계없지만, 없는 사람들은 더 고달프고 서럽다. 이제 사회 안녕을 위해 ‘사회의 평형수’를 점검해야 한다.
2019년 평형수 처리기술 시장규모 무려 80조원
지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겐 마중물이 절실하다. 펌프에서 샘물을 길어 올리기 위한 한바가지 물이다. 안산 단원고 주변엔 아직까지 문 닫은 슈퍼와 문구점, 세탁소, 미용실, 분식점들이 있다. 그곳은 희생자 가족의 생계의 터전이다.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많다.(5월 23일 현재 16명) 그들에게 한바가지 마중물은 크나큰 생명줄과 다름없다.
평형수가 배의 평형을 잡듯, 마중물은 사회의 안녕을 유지한다. 사회의 평형수는 다름 아닌 마중물이다. 마중물을 제대로 공급하고 점검하는 게 정치다. 좋은 정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여섯 마리 말을 썩은 동아줄로 이끌어 함께 달려가게 하는 일이다.
평형수와 관련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평형수 처리기술이다. 배 입출항시 매년 바다에 배출되는 평형수는 팔당땜 저수량의 20배에 달하는 100억t에 이른다. 바닷물을 통해 유입되는 해양생물체에 의한 해양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 이를 막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2월 13일 배 평형수 관리 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평형수 오염처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평형수 처리기술 시장규모는 80조에 달하는 블루오션이다. 현대중공업과 테크로스, 아쿠아이앤지, 이엘코리아는 글로벌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은 물론 대-중소기업이 협업에 만전을 기해야 옳다. 사업보국(事業報國)과 국익창출(國益創出)이 국가개조(國家改造) 못잖게 중요하다. 세월호 희생자 넋을 기리고 가족을 위로하는 길이기도 하다.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