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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는 주상복합 건물 이름은 ‘KCC엠파이어리버’다. 웬만한 영어 내공이 없어서는 외우기는커녕 그냥 읽기조차도 힘들다. 또한 우리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어려운 외국어로 짓는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찾아오실 아내의 시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굳이 이런 이름의 아파트이어야 하는 건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외국어(주로 영어) 이름 짓기 선두주자는 단연 골프장이다. 무슨 무슨 밸리가 어떻고, 크리크가 어떻고, 거기에 죄다 컨트리고 클럽이다. 이름만 갖고 찾아가노라면 지금 한국에 있는 골프장을 가는 건지, 영국이나 프랑스 골프장을 가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언젠가 필자는 한 번 작정을 했었다. 좋은 우리말 놔두고 굳이 어려운 외국어 쓰는 골프장에는 가지 않겠다고. 아! 그랬더니 바로 좋아하는 골프를 끊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한글 이름의 골프장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드물다는 것. 오죽했으면 필자가 관계하는 단체,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에서는 ‘솔모로 골프장’을 예쁜 이름, 좋은 이름의 골프장으로 선정해 상을 주기까지 했을까?
뭐 골프장은 주인의 마음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니, 더 이상 필자의 간섭도 예의를 넘는 것 같고, 대신 이런 결심이나 하고 끝내기로 한다. 필자가 만약 생전에 골프장을 하나 세운다면 이름이 ‘재화 공치는 곳’이다.
골프의 즐거움은 잔디 위에서 샷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전날 보따리 싸는 것부터 라운드의 그 흥미진진함이 나타난다. 그것처럼 꼬박 2년을 준비하고 골프모임 하나를 결성했는데, 우리 골프회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내내 큰 즐거움이었다. 골프장의 외래어 명칭 따라 ‘근사한’ 작명을 했을 거라구? 멋진 이름은 맞다.
그러나 영어나 뭐 스페인어, 스와힐리어 그런 거 아니다. ‘중구난방’이다. 중구난방이라 하면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이 말 저 말 마구 하는 형상’인데, 그래서냐구? 한자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우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온 사람들이어서 한자 표기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中球暖房’, ‘중앙대 출신의 공치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된다.
골프장에 가면 라운드가 끝나고 회식을 하는 방에 걸려있는 ‘이화회’니 ‘삼목회’, ‘사수회’ 등의 단체 이름을 많이 본다. 이화여대 나온 여성들 모임 아닌 두 번째 화요일에 라운드를 갖는다는 뜻일 것이고, 나무를 심는 게 아닌 세 번째 목요일,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의미의 ‘사수(死守)’가 아닌, 네 번째 수요일에 만나는 四水일 것이다.
-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언론학박사)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