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 골프 세상만사]행복했던 골퍼의 잃어버린 꿈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날씨가 좋았던 지난 6월 하순 주말에 경기북부에 있는 T 골프장에서 친한 후배들과 들뜬 마음으로 통산 1621번째 라운드를 했다. 그런데 결과는 90타를 치고 허탈한 웃음을 토했다. 필자가 25년 전 골프에 입문한 이래 그간 1620번의 평균타가 84타였지만, 지난 1년여 동안에는 국내 라운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했고, 또한 연습도 거의 하지 않았던 탓에 이런 총체적인 난국을 맞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연중 몇 번은 70대 스코어를 기록하기는 한다. 그 이유는 일년에 한 번 정도는 동남아에 골프 휴가를 가서 약 10라운드를 몰아서 치기도 하고, 이따금 해외 출장 갈 때는 주말에 현지에서 라운드 하면서 최소한의 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주변의 골퍼들이 간혹 “왜 연습조차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필자는 “이제 더 이상 골프를 잘 칠 이유와 목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필자는 25년 전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까지 골프에 입문시키고, 방학 때면 대중 골프장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패밀리 스포츠를 즐겼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가족이 한 라운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백만 원 이상의 경비가 드니 패밀리 골프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많은 골퍼 친구들이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주중에도 20만 원씩 들어가는 비싼 골프를 끊겠다고 선언하니, 경쟁자도 없어지고 아주 잘 치는 모범이 될 만한 동기마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과거엔 주1회의 주말 골퍼로서 생애 목표를 66타로 정해 이메일 주소에도 66이란 숫자를 넣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며, 연간 10만개의 연습볼을 쳤으니 그 분량이 5톤 트럭에 한차 가득 채울 정도였다. 또 마지막 에이지 슈팅은 83세에 이루겠다는 야무진 꿈도 세웠지만, 이제는 그 꿈도 잊어야 할 것 같다.
▲50파운드 이내로 라운드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100대 골프장 가운데 67위에 뽑힌 ‘Whitekirk CC’
지난 5월말 영국 출장 중에 스코틀랜드 코스에서 라운드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골프 1라운드 하는데 드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8만 원 정도였다. 이런 골프장이 스코틀랜드에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별소비세 등이 2만여 원, 1인당 캐디피 3~4만 원, 골프카 이용료가 1인당 2만5000원 정도가 들어가니, 첫 홀 티샷을 하기도 전에 이미 8만 원이 지출된다. 더욱이 은퇴한 영국 노인들은 1년에 300만 원 정도의 회비로, 연중 내내 그린피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라운드가 가능하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혹자는 지금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경영환경이 더 나빠져서 과거 일본처럼 부도가 나고 문 닫게 되면, 시장원리에 의해서 구조가 재편되고 결국 대중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건강할 때 한 번이라도 더 가까운 가족 및 친구들과 골프를 하고 싶어 하는, 많은 골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장만 챙기는 정부나 골프장들의 행태가 못마땅하다.
골퍼들과의 상생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골프 관련 세제를 세계 평균 수준으로 다듬어야 한다. 골프장 역시 캐디 선택제와 골프카 이용료 및 식음료 가격 등의 현실화를 통해, 많은 골프 애호가들이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라운드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 400만 골퍼들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필자가 최근 골프문화 포럼의 창립 모임에 나갔을 때 “한 일 년만 더 대중화에 애착을 갖고 협력과 노력을 해보고 나서, 그래도 별 진전이 없으면 그때부터 골프 안 치고 당구나 치겠다”며 속 시원히 내뱉기도 했다.
- 김덕상 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KGA 생활체육분과위원) (정리 = 이진우 기자)
김덕상 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