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큐레이터 다이어리]명품의 거리 쿠담, 콜비츠미술관의 추억
일상을 떠나 전쟁과 평화의 도시에서 예술혼 가다듬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베를린에 여행을 다녀왔다. 일상을 떠나 잠시 숨을 돌리는 유람은 내가 애타게 바라던 것이다. 준비가 미흡했던 건지 처음 경험하는 이유인지 출국 전날 밤엔 불안과 설렘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행기 표를 받아서 출국절차를 마치니 여행의 실감이 났다.
베를린 여행은 아내가 제안한 것이다. 어느 날, 독일여행을 가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우리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됐다. 이번 여행은 일에 관련된 여행이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이 되길 간절하게 바랬다. 생각을 넓고 여유롭게 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시간 정도의 비행으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1시간 정도 더 타고 베를린으로 갔다. 베를린 테겔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베를린시간),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첫날 숙소는 쿠담(Kurfürstendamm)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날씨는 간절기로 바람이 부는 저녁이라 서늘했다. 다음 날 아침, 한 동네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거리로 산책하러 나갔다. 쿠담은 명품의 거리이다. 누구나 부르면 알만한 명품 가게가 즐비하며, 갤러리, 인테리어 디자인 가게, 역사적인 문학 카페, 콜비츠(Kathe Kollwitz) 미술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인도가 꽤 넓은 것이 특징이다. 베를린의 상징적인 동물은 곰이다.
시내 곳곳에 곰을 형상한 조형물들이 비슷한 크기로 있으며, 곰들에게는 그 지역의 특색에 맞춘 유명가게나 미술관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달리 미술관에 주변 있는 곰(조형물)은 달리초상이 그려져 있는 식이다. 우리의 여행은 관광코스를 돌아보는 것에 더 나아가 베를린에서 그 사람들과 같이 살며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빌려 숙소로 삼았고, 첫날 호텔투숙을 제외하고 그곳에서 머물렀다. 시내 중심지와 지하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위치이며, 놀다 힘들면 얼마든지 들어와 쉬었다가 언제든지 다시 나갈 수 있는 곳이다. 베를린은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인 모습이다.
▲유대인 추모 공원, Berlin. 사진 = 김재훈
집들(아파트)은 비슷한 모양에 규칙적으로 천장이 높게 지어져 있고, 문틀과 지붕의 장식적인 부분과 양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며, 색상은 파스텔 또는 단색조로 어우러져 있다. 6월 초, 여행 중 베를린의 날씨는 화창하고 햇빛이 강했지만, 그늘은 안에는 서늘했다. 습기가 없는 날씨로 밤과 낮의 일교차가 컸고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졌다. 여름에 모기는 없고, 공기도 산뜻했으며 신기할 만큼 여행 중 불편함이 없는 날씨와 환경이었다.
베를린은 전쟁, 화해, 평화를 간직한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만들어진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이 그대로 보존된 지역은 우리가 머문 아파트에서도 5분 정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곳(Bernauer)이었다. 장벽의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바로 옆 주택의 벽에는 장벽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크게 설치해 놓았다. 베를린 장벽을 보존하고 있는 장소는 여러 곳이지만, 특히 베를린의 현재를 볼 수 있는 상징적인 곳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이다.
시내 중심을 기준으로 동쪽에 슈프레(Spree) 강을 따라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ücke) 옆에 설치된 장벽에는 평화를 바라는 예술가들이 모여 벽화를 그린 곳이다. 길이가 1.3km 정도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다. 특히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은 성수기 때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형제의 키스, East Side Gallery, Berlin. 사진 = 김재훈
베를린의 현재를 볼 수 있는 곳,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시내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에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그곳은 반듯하고 높이가 서로 다른 진회색 거대한 2711개의 기념비가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히 채워진 공간이다. 중심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 직육면체의 비석의 높이가 높아지고 바닥은 아래로 점점 깊어진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Denkmal)이라 불리는 이곳은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피터아이젠만(미국)이 설계해 2005년 완공된 곳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설치된 금속의 정 사각의 타일은 그곳에 살던 유대인의 이름과 생몰년도 생을 마감한 곳이 새겨져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은 시(市) 곳곳이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베를린대성당(Berliner Dom)과 박물관 섬에 있는 박물관(구 박물관, 18~19세기를 걸쳐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건물에 벽과 기둥에는 전쟁의 남겨진 총탄과 포탄의 파편 자국이 고스란히 남겨놓아 과거의 끔찍한 전장에 순간을 보며 잘못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억지스러움, 가벼움, 일시적이고 형식 모습이 아닌 진정과 진실로 역사를 말하는 곳이 베를린이라고 느껴졌다.
▲보존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의 모습, Berlin. 사진 = 김재훈
세계 4위의 경제 대국, 제조업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나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물가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없다. 아침에는 동네 가까운 빵집에서 커피와 갓 구운 따뜻한 빵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 공원에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애견을 산책시키는 모습에서 여유와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독일에서 유명한 것은 맥주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맥주는 신선도 관리가 맛을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생산지에서만 마실 수 있는 현지 전통 맥주는 여행자의 특권이다. 여행 중 기분 좋은 날씨를 덤으로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아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서 다양한 맥주를 마시고 여유를 만끽한 것만으로도 베를린 여행에 깊게 빠질 수 있었다.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