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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골프도 오래하다 보니, 그래서 골프장비도 꾸준히 마련하다보니, 뒷방 구석에는 일 년에 한 번의 골프라운드 외출도 없이, 마냥 정물처럼 서있는 골프채의 수가 늘어간다. 골프채를 개비할 때마다 골프를 시작하는 후배에게 통째로 줘 버리기도 하지만, 한때나마 너무도 사랑해서 차마 남에게 넘기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것들이다.
그 중 하나가, 메탈 소재의 우드가 나오기 전에 골퍼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감나무 소재의 우드다. 페어웨이에 이슬이 많은 새벽에 나가 라운드를 돌던지, 빗속에서 라운드를 한 날이면 어김없이 종이로 젖은 헤드를 감싸서 습기를 빨아낸 뒤에 가방에 넣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응달에서 말린 후 새것처럼 예쁘게 메이크업을 해달라고 골프채 미장원이라고 불리는 수선소에 보내고는 했었다. 스위트 스팟에 공이 격돌할 때면, 클럽페이스에 반쯤은 쑤셔 박혔다가 거세게 반발하며 튀어나가는 감나무의 탄성력이 미치게 좋았다.
한때 그 감나무 골프채와 필자가 마치 한 몸인 듯, 아니 한 쌍의 연인인 듯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누구의 실수인지, 아니면 고의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가 함께 라운드를 했던 친구의 채가방에 묻어 들어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내가 얘하고 한 라운드 돌아봤는데 맞는 느낌이 죽이더라. 나한테 불하해라. 니가 많이 가지고 논 헌 물건이지만 내가 값을 후하게 쳐줄게” 친구는 마치 필자의 오랜 애인하고 하룻밤을 즐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애인을 넘기라고 까지 하고 있었다. 필자는 감나무 애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말을 듣고 봐서 그런지, 그 아이는 전력질주한 유희 끝의 여인처럼, 몹시 피곤한 듯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고, 피부도 푸석푸석하니 각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문득 어디선가 읽은 것처럼 연애상담 글 구절이 떠올랐다. 오래 사귄 애인이 어느 날 이런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자기야, 나 어제 다른 남자랑 잤어” 그런데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남자1은, 그녀의 방글방글 웃는 미소에서 사촌동생이나 조카하고 잤으면서 장난치는 줄로 생각한다. 남자2는, ‘잤다구? 그냥 잠만 잤으니까 잤다고 하겠지, 안자고 다른 짓을 했으면 이따위 고백을 왜 하겠어’라고 거의 신앙차원의 믿음으로 애인을 굳게 신뢰한다. 남자3은, 애인에게 마다가스카르 섬 근처의 무인도나 아프리카 정글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래도 한때 진실하게 사랑했으므로 차마 죽일 수는 없고 내동댕이치듯 버리고 오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 남자4는, 은밀히 살인청부업자에게 살인을 의뢰한다. 한사람 추가는 반액 할인이 되는, 가격이 헐한 반면 좀 잔인하게 처리해주는 곳을 찾는다. 꼼꼼하게 검색기록도 지운다.
필자는 남자4와 같은 타입이다. 해외골프 나들이 갈 때 가지고 가서 확 불 질러 태워버리려고 작정했다. 또한 친구도 함께 데리고 가서 골프채로 패준 다음에.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애인을 넘기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듯 사랑도 흘러갔다. 거리와 방향성이 우수한 신소재의 무기들이 개발되면서, 그 아이보다 한층 매력적인 아이들에게 미혹되어, 필자가 그 아이를 멀리했다. 그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한물 간 퇴기처럼 뒷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늙어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 김영두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소설가)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