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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빛 아래에서 영업부 김 부장은 회사와 갑의 관계인 거래처 상무의 사모님을 모시고 담당 부서의 과장들까지 대동해 접대골프를 치고 있었다. 이 사모님은 아름다운 미모와 숏 게임의 귀재로 소문나 있던 터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업계에서는 약속을 사업철칙으로 여긴다는 인물이다.
남편이 해외 출장을 나가 대타로 나온 그녀는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로 세 남자와 마주하며, 수줍고 연약한 여인의 장점을 되살리는 애교도 잊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건네는 남성들의 농담을 되받으며 골프 예절을 지켰다. 이에 김 부장은 다소나마 부담으로 느꼈던 필드 위 상황들에 대해 한시름 놓았다. 다만 그녀는 남편과 관련한 대화에서는 사뭇 소극적이었다.
이제 인사치레도 끝나고 서로에 대한 탐색전도 끝나는 시점인 전반 홀 후반 무렵에 김 부장이 내기 골프를 제안했다. 긴장으로 무장하고 티 박스에 오른 김 부장은 정타의 진수를 선보이며, 정중앙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두 눈을 도둑고양이처럼 뚫어져라 뜨고 바라보던 그녀가 숙녀 티 박스에 섰다. 그녀의 드라이버 샷은 가늘고도 부드러운 허리의 유연성에 힘입어 유유히 창공을 가로질러 김 부장의 볼과 나란히 섰다.
울창한 나무 숲속에서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을 들으며, 김 부장은 이마의 굵은 땀방울들을 손수건으로 닦고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걸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그녀가 향기로운 잔잔한 장미향을 풍기면서 두 발자국을 뒤로 한 채 따라 걸었다. 김 부장은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며 움찔했다.
김 부장이 우드 샷을 받아들면서 칠 준비를 하는 순간, 풍만한 가슴으로 연약하리만큼 가냘픈 두 다리를 지탱하며 선채로 그녀의 두 번째 샷이 올려쳐 졌다. 그런데 ‘아뿔사!’ 그녀의 볼이 조금 전 매미가 울어대던 나무숲으로 날아갔다. 오비다. 그녀의 작은 키에 비해 유난히 커 출렁이던 가슴도, 여린 두 다리도 어느새 저만큼 숲으로 향했다.
이어 김 부장의 두 번째 샷이 내려쳐 졌다. 그의 볼은 그녀의 볼 라인 가까이 간신히 오비를 면한 곳에 섰다. “괜찮아요. 굿 샷!” 캐디의 안전하다는 목멘 소리가 오히려 김 부장의 속셈을 야속하게 만들었다. 공을 찾느라 나무 숲속을 헤집고 있는 그녀의 등 뒤로 김 부장이 덩달아 공을 찾아 나섰다. 그녀의 장미향만으로도 머리가 아득한데, 그녀가 공을 찾느라 허리를 숙일 때마다 젖무덤이 그대로 김 부장의 눈에 꽂혔다. 그때마다 김 부장은 연신 기침을 일삼았다.
그녀가 “긴장하면 스윙을 허투루 하게 되는데, 오늘이 그러네요. 전 원래 오비 잘 안내거든요”라고 말할 때, “예”하고 엉거주춤 대답을 대신하던 김 부장의 눈에 그녀의 핑크빛 볼이 눈에 들어왔다. 볼을 주어 그녀에게 건네려는 찰나, 그녀와 몸이 맞부딪쳤다. “어머! 동시에 발견했네요”라는 그녀의 수다스러운 소란이 없었다면, 아마도 김 부장은 그녀를 와락 안아버리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순간 생각했다.
마냥 넋 놓고 바라보던 김 부장을 향해 그녀가 “정타의 오르가슴으로 승부해요. 우리!”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김 부장은 마음속으로 ‘오르가슴! 우리!’라는 두 마디 말을 오래도록 되새기고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라운드에서 그녀는 자기가 한 말대로 정타를 고수했다. 김 부장도 이에 질세라 정타를 지키면서 그녀와의 뜨거운 정타의 하룻밤을 내내 상상하고 있었다. ‘저 가느다란 두 허리를 움켜잡고 오래도록 오르가슴을…’ 그때마다 김 부장의 입 꼬리는 슬며시 올라갔다. 영문을 모르는 부하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 라운드는 끝이 났다. 하우스로 돌아와 장갑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선 김 부장이 손을 씻으려는 순간, 화장실 통로에서 그녀의 웃음소리와 늙수그레한 바리톤 남자의 통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양 마담 반가워”, “어머머! 회장님 반가워요”, “오늘 밤 정타로 한번 어때! 으응…”, “호호호! 여전하세요”
- 손영미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정회원 (극작가/서울아트스토리)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