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하늘과 맞닿은 호수 ‘티티카카’서 박노해 시인이 바라본 남미의 심장
박노해 볼리비아 사진전, 라 카페 갤러리에서 11월 19일까지
▲박노해 볼리비아 사진전 전경. 사진 = 안창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권력과 영예로 가는 환한 오르막길과 정의와 사랑으로 가는 어두운 내리막길, 나는 결정의 순간마다 체 게바라의 갈림길에 선다.”
도심 속 시골 마을 같은 편안한 풍경과 자연을 벗한 고즈넉한 산책로로 유명한 부암동. 개성 있는 카페들이 밀집한 그곳 언덕길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리는 ‘라 카페 갤러리’에 들어서면 시인의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투쟁과 저항의 80년대를 뒤로 하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던 박노해 시인은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전 세계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에서 조용히 평화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흑백 필름 카메라와 오래된 만년필을 들고, 지도에도 없는 세계 오지의 마을을 두 발로 걸으면서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글과 사진에 담고자 했다.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 Bolivia, 2010. 제공 = 라 카페 갤러리
지난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노해 시인의 ‘다른 길’ 전시는 이렇게 시인이 국경을 넘어 삶의 진실을 담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많은 이들은 아시아 6개국의 곧 사라질지 모르는 마지막 삶의 풍경을 담은 120여 점의 사진 작품과 시인의 글에 호응을 보냈다.
라 카페 갤러리에서의 이번 전시 ‘티티카카’에서 시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볼리비아다. 불멸의 시와 노래, 혁명의 역사가 흐르는 대륙 중남미에서 볼리비아는 8천 년 안데스의 혈통과 전통을 지키며 남미 최초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번 전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중 한 곳인 ‘티티카카’부터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의 오지 마을 ‘라 이게라’까지 시인의 시선이 머물렀던 장소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가 전시의 도입부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흘러내려 바다 같은 호수를 채우고, 수많은 원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고리를 잡으며 살아간다.
▲‘끼누아를 고르는 농부’, Achacachi, Omasuyo, Bolivia, 2010. 제공 = 라 카페 갤러리
시인은 해발 5천 미터 고원의 티티카카 호수 마을에서 일생 동안 감자밭을 일구며 살아온 94세 할머니를 담은 사진 ‘안데스의 어머니’에서 그녀에 대해 “아들딸을 존경받는 혁명가와 교수로 키워냈어도, 오늘도 고향 땅을 지키며 감자를 심어 거두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우리가 자유를 얻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 우리의 소망은 감자를 심고 거둘 땅을 되찾는 거였어. 그들은 총알을 늘리며 탐욕을 늘려가지만, 나는 한 알의 감자를 심어 늘려갈 뿐이야. 내 아이들에게 늘 말하지. ‘잊지 마라. 넌 안데스 땅의 감자 한 알이다.’”
만년설의 티티카카 호수에서 체 게바라 최후의 순간까지
시인의 사진과 글 속에서 자급자립의 삶과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은 ‘이름 없는 혁명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인이 마주한 ‘서른다섯 여자 광부의 죽음’은 지금도 여전히 좁고 캄캄한 지하 광산에서 세상의 빛과 풍요를 캐내는 광부들의 삶의 현실을 증언하고, 그 가난과 고통이 우리에게도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전시는 시인의 여정을 따라 마지막으로 ‘체 게바라의 길’을 보여준다.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의 오지 마을 라 이게라로 가는 길. 아침 태양에 빛나는 갈림길을 찍은 사진에는 ‘체 게바라의 길’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이는데, 그 표지판은 실제로 어두운 내리막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어 ‘그라시아스 니냐-고맙다 소녀야’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서른아홉의 나이로 총살당한 체 게바라의 최후를 함께한 여인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여준다.
▲‘게바라에게 최후의 식사를 드린 여인’, La Higuera, Santa Cruz, Bolivia, 2010. 제공 = 라 카페 갤러리
“당시 이 마을의 하녀로 일하던 이르마(60)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교실 구석에 묶여 있던 게바라에게 땅콩죽을 만들어 드렸다. 지상의 마지막 온기를 받아 들며 체 게바라는 쿨럭이는 기침 사이로 그녀에게 최후의 인사를 전했다. ‘그라시아스 니냐.’”
박노해 시인은 어쩌면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를 다시 기억하고자 이번 볼리비아 여정을 떠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청년들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왜 그렇게 입고 있는지, 또 볼리비아 원주민들이 시위를 할 때면 왜 항상 체 게바라의 사진을 걸어 놓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부임동의 모퉁이의 조그만 카페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서 시인이 마지막 종자처럼 담아온 사진과 글을 통해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창현 기자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