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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미술관에 놀러온 수학

서울세계수학자대회 기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매트릭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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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2호 안창현 기자⁄ 2014.08.21 09:14:27

▲유지원, ‘단위와 배열: 동아시아 수학과 일상의 공간’, 시트지 출력, 설치, 2014.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학은 추상적이고 신비한 분야이자 좀처럼 친해질 수 없는 학문이다. 하지만 수학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일 뿐이다. 수학은 충분히 관능적이며 맛볼 수 있고, 냄새를 표현할 수도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수학에도 미술처럼 색깔이 있을까? 독일의 여성 수학자이자 영화감독인 에카테리나 에레멘코는 자신의 영화 ‘Color of Math’(2007)에서 수학도 관능적일 수 있으며 오감을 통해 인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카테리나 에레멘코의 말처럼, 수학에도 맛과 향기가 있고, 소리와 색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수학을 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개최하는 전시 ‘매트릭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은 수학이 일반 대중에게 단지 어렵게만 느껴지는 추상적인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태도라는 것을 알려준다.

전시 제목 ‘매트릭스’는 근대 이후 수와 계산 또는 행렬과 연산에 의해 통제 받는 ‘수학화된 오늘날’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술가들 또한 수와 계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이런 ‘수학화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8월 11일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슬기와 민’의 최성민 작가. 사진 = 안창현 기자


수학화된 세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산적인 세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의 부제가 말해주는 것과 같이 수학에는 ‘순수’를 향한 동경과 수학자의 열정이 있다. 또한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계산 불가능하거나 결정 불가능한 삶의 영역, 어떤 심연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수학과 예술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울 수 있다. 순수를 향한 동경과 삶의 심연을 상상하는 태도를 예술가와 수학자들은 공유한다.

이번 전시에서 영원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수학자의 ‘순수에의 동경’과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영역 ‘심연’의 사유를 통해서 다른 종류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힘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술가 특유의 시선으로 회화와 조각, 디자인, 뉴미디어, 사운드, 건축공학,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우리 삶에 내재한 수학적 사고와 현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기술을 통해 융복합적인 시도를 하는 점도 전시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수학에 대한 예술가의 흥미로운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최슬기, 최성민)의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 영역’이다.

대부분 한국인에게 수능 수학 영역은 ‘수학적 삶’의 절정이자 끝을 장식할 것이다. 초중고 12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수학 교육은 일상생활 적용 여부와 무관하게 가치 있지만, 슬기와 민은 수능 시험에서 그 가치가 100분만에 단 30문항으로 장렬히 표현된다는 사실에 어떤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랜덤웍스, ‘City DATA Seoul Daily Expenditure’, 리얼타임 프로젝션 미디어, 2009.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사회 속에 스민 수학을 예술가 시선으로 살펴

1997년 수능 수학은 수능 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험으로 오늘날까지도 악명이 높다. “수학을 하기에는 감수성이 부족해 미술을 진로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작가는 스스로 풀어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험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30개 패널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각 주어진 문항을 분석하고, 시각적·언어적·개념적으로 흥미로운 단서를 찾아 발췌하거나 변형 또는 재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작품은 예술가가 수학 문제에 대해 그 나름대로 제시하는 답안지가 된다.

이번 전시에는 슬기와 민을 비롯해 베르나르 브네, 자비에 베이앙, 랜덤웍스(민세희+김성훈), 국형걸, 송희진, 김경미, 유지원 등 국내외 작가 15명이 참여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개념미술가인 베르나르 브네는 미술관에 대형벽화 작품을 선보인다. 수학 공식 등을 바탕으로 한 회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작가는 벽면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수학 공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송희진 작가는 최재경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가 지난 30여 년간 기록하고 보관해 온 수학 연습노트 11권의 내용을 확대 복사해 ‘진리의 성’이라는 공간을 꾸몄다. 낙서와 같은 수학공식과 난제를 풀어가는 데 이용했던 도형들이 최 교수가 그린 꽃 그림과 함께 배치되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현대사회의 수많은 데이터들을 이용해 이미지를 구성한 작품도 눈에 띈다. 랜덤웍스는 지난 100일간 서울시의 지출 데이터로 만든 지형도를 선보인다. 교육지원 경비, 인력 운영비, 청사 유지 관리 등 서울시의 일자별 지출 정보를 시각화해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가 어떤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살필 수 있게 했다.

반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수와 계산의 영역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살피는 작품도 있다. 유지원 작가는 동양의 수학이 갖는 하도와 낙서라는 특성을 공간 설치작품으로 보여준다. 하도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일정한 수의 배열로 배치한 것을 말하며, 낙서는 중앙을 중심으로 8개의 방위에 특정한 수를 배치한 것을 일컫는다. 작가는 동양 수학의 특성을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수학에 대한 예술가들의 자유롭고 독특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국제수학연맹 주최로 4년마다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융복합이 강조되는 시대에 수학계와 예술계의 의미 있는 교류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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