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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이수정]모든 것은 밝혀질 수 없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넘어 시각적 판타지가 재현된 회화적 달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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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4호 글·김종길 미술평론가⁄ 2014.09.04 09:19:10

▲In 9minutes, oil on canvas, 96x162cm, 201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이수정의 ‘아이스크림’ 회화는 우리가 친숙하게 보았던 어떤 사물, 사건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물론, 그 사물은 예외 없이 아이스크림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해류와 난류가 혼합되고 흩어지는 기이한 풍경을 연상시키고, 어떤 것들은 버려진 살코기를 떠 올리기도 한다. 지난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멕시코 만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영국 최대 기업이자 세계 2위 석유회사인 BP의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시추시설 폭발로 인한 유출) 장면 같기도 하다.(중략)

마치 완고한 비밀이 풀려버린 뒤의 ‘상식’이나 특이성을 상실한 ‘보편’의 느낌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일말의 상관조차 없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 것일까. 역설적일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 의문의 실마리에서 이수정 회화의 의미를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수정 작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이스크림이라는 물성의 인식-연상 작용이다.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시원하며 달콤하다. 아이스크림은 더위와 갈증을 해소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료이고, 무엇보다 입에서 살살 논는 얼음 성분 때문에 그 연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이수정이 포착하는 지점은 그러나 그런 인식과 연상에 의한 어떤 의식들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의 시각적 판타지다. 부드럽고 시원하면서 달콤한 그것이 더위와 갈증에 의해 살살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의 형체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고유한 물성의 형태와는 다른, 이질적이면서도 경쾌한 색의 현란함을 보여준다.(중략)

그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넘어서 시각적 판타지가 재현된 회화적 달콤함을 말하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그런 회화가 달콤함을 통해 아이스크림의 리얼리티를 재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리얼리티의 면모는 단순히 달콤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면화 된 이미지의 크기와 사실적 표현에서 물질의 추상성, 색의 추상성을 떠올릴 것이고, 또한 그것이 녹아서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는 기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먹고 싶다’ 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정들, 예컨대 참 독특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색이 예뻤나? 어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녹게 내버려 뒀지! 개미와 파리 떼들. 아이스크림 맞아? 아냐, 이건 마치 우주 은하의 코스모스 같지 않아?

▲In 14minutes, oil on canvas, 130x162cm, 2014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의 물질에 대한 인식은 그 물질의 고유한 형상과 색채, 크기, 냄새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 고유하다’ 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과연 무엇이 고유한 것인지를 묻게 된다면, 우리는 쉽게 단정하거나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스크림의 고유성도 마찬가지다. 슈퍼마켓 냉장고에 있을 때의 아이스크림과 달리 밖으로 꺼냈으나 우리 입으로 들어가지 못한 상온의 아이스크림은 형체가 흩어져 고유성을 상실하게 된다. 무수한 험담과 잡담들처럼 고유성은 낱낱이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흩어지고 해체된 고유성은 그런 다음 새로운 언어, 새로운 상상, 새로운 미디어가 된다. 지금 우리는 회화적 재현으로 구축된 아이스크림의 리얼리티를 보고 있다. 그 리얼리티는 해체되고 부서진 경계 뒤에 떠 있는 아이스크림의 또 다른 실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스크림으로 소급되지 않는다.

▲In 12minutes, oil on canvas, 45x53cm, 2014


아이스크림에서 ‘탈주’의 첫 포인트 발견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적 상상은 한없이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상상의 영역으로, 공간으로 탈주할 수 있다. 이수정은 녹아서 일그러진 아이스크림에서 바로 그 ‘탈주’의 첫 포인트를 발견했으리라!

두 번째 실마리는 그러니까 녹기 전의 아이스크림과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사이의 ‘시간’에 관한 것이다. 이수정은 정물적 대상이 된 아이스크림을 재현한 것이지만, 그가 실제로 의도했던 것은 정물로서의 아이스크림이 아니다.(중략)

그는 1970년대 후반의 한국적 극사실주의의 후예일수도 있고 20세기 후반에 창궐한 한국적 팝아트의 직계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모든 것을 병렬적으로 꿰매어 맞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In 10minutes, oil on canvas, 162x260cm, 2014


어느 한쪽으로 묶일 수 있는 지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세계가 초현실 혹은 비현실적 공간으로 월경해 버린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의 세계는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는 그 시간, 그 순간에 있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다. 그는 말한다.

“그건 더 이상 차갑지 않았고 그 달콤한 모양이 아니었으며 내 손을 타고 줄줄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버렸다.  내가 놓쳐버린 것들이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고 다른 것에 한눈이 팔려 있었다.  만족하지 못했었던 때가 있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란 언제일까?”

▲In 13minutes, oil on canvas, 60x120cm, 2014


그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시간의 틈에 존재한다. 이수정의 아이스크림 회화는 그런 틈이 만들어낸 ‘상실’과 ‘탈주’의 미학이다. 실상 이 회화의 근거리에는 그가 없다. 그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것이 바로 이 틈이며, ‘녹음’이며 섞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아이스크림을 잊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거나 문득 잊었을 것이다. 회화는 그 모든 알레고리의 시작에 불과하다. 아니 마지막 남은 증거이자 클로즈업의 시퀀스일지 모른다.

한편, 이수정 작가의 작품들은 9월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Time’전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 글·김종길 미술평론가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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