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링’ 김지희·‘타짜-신의 손’ 마리킴 등 활발한 협업 작업 전개
▲영화 ‘취화선’(2002)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리는 장승업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그의 그림 또한 볼 수 있다. 사진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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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화면에서 익숙한 그림을 발견하는 것만큼 반가운 경험은 없다. 영화의 스토리는 물론 아름다운 그림도 감상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영화와 미술이 손을 잡고 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런데 그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었던 형태는 영화에 화가의 일대기를 그리며 자연스럽게 작품까지 소개하는 것이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고갱의 이야기를 그린 ‘파리의 고갱’(1986, 덴마크), 신 표현주의 화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가 주인공인 ‘바스키아’(1996, 미국),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을 그린 ‘클림트’(2006, 이탈리아) 등이 있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중섭’(1974)은 한국의 서양화가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보여줬고, ‘취화선’(2002)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리는 장승업의 삶과 그림을 다뤘다. ‘미인도’(2008)는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세계에 접근했다. 이런 영화들의 경우 아무래도 주인공이 화가이기에 그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보며 이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김지희 작가의 작품은 영화 ‘하울링’에 등장했다. 위장웃음(Sealed Smile), 장지에 채색, 163x130cm, 2008
이와 달리 평범한 영화 속에 미술 작품이 등장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단순 배경이 아니라 영화와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어엿하게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하울링’(2012)에 등장한 김지희 작가의 작품을 들 수 있다. 하울링은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함께 수사하는 만년 형사 상길과 신참 여형사 은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에 환한 미소 속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통찰하는 ‘억지웃음(Sealed Smile)’ 작업으로 알려진 김지희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졌다.
작품은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속을 살펴보면 불법업소를 운영하는 등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공간의 벽에 걸린 채 등장하는데, 작품에 그려진 미소가 분위기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작가는 “영화 관계자가 작품을 직접 보고 협찬 의뢰를 해 프린트로 제작해서 이미지를 제공했다”며 “작가의 작품이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은 갤러리, 미술관 등 한정돼 있는데 영화에 노출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작품이 영화에 등장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 또한 작가의 작업 주제와 의미가 맞닿아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작가는 “영화에서 앞에서 볼 때는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지만 뒤에서는 불법 유흥업소를 운영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는 걸 볼 수 있는데, 내가 작업하고 있는 ‘위장 웃음’ 시리즈 또한 억지로 짓는 미소 속 감춰진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이뤄지고 있기에 의미가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리킴 작가의 ‘아이돌(EYE DOLL)’ 캐릭터는 영화 ‘타짜2’에서 배우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영화의 주제와 연관 있는 작품이 등장해 영화와 작품 모두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최근엔 아예 작품이 영화의 배우로 출연하는 사례도 볼 수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영화관에서 개봉중인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에 등장하는 마리킴 작가의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마리킴은 그룹 2NE1의 뮤직비디오와 앨범 재킷을 제작하고 화장품 브랜드 미샤의 제품에 캐릭터를 담는 등 타 장르와의 협업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영화 ‘미인도’(2008)에 등장한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의 작품.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주제 극대화하거나 배우로 출연하는 작품도 등장
이번엔 영화와 협업을 했는데, 타짜2에 유명 여성인물들을 새롭게 아이콘화시킨 마리킴의 ‘아이돌(EYE DOLL)’ 캐릭터가 등장한다. 처음엔 의류에 그려져 있는 평범한 이미지로 나오는데, 여기서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바뀌면서 아이돌 캐릭터가 영화 속 배우를 대변하게 된다. 춤을 추고 다양한 동작들을 하는 장면은 어떻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극 중 배우들 사이의 연결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협업 작업은 영화에 등장할 독특한 캐릭터를 찾고 있던 강형철 감독의 제안으로 진행됐다. 마리킴은 “제의를 받고 재밌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도 즐거웠지만 영화관에서 결과물을 확인했을 때야말로 특이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제의가 들어온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있다. 미술과 다양한 장르와의 재미있는 협업 작업이 보다 문화계 전반에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처럼 영화와 미술의 흥미로운 협업 작업을 앞으로도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