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이미지’와 ‘실체’ 차이, 이를 꼬집는 유쾌한 전시
스페이스비엠 ‘박은정 개인전-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
▲스페이스비엠에서 열리고 있는 박은정 작가의 개인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 전시장 전경.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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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 이곳저곳 복잡하게 전시돼 있는 작품들이 ‘이곳이 정말 전시장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박은정 작가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큰 목소리로 손짓, 발짓 등 온 몸을 이용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종종 관람객들과 함께 깔깔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큐브 안에 정갈하게 작품이 전시돼 있는 조용한 전시장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그 독특함이 신선했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현재 스페이스비엠에서 첫 국내 개인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을 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그는 미술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엔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극악무도했던 연쇄살인범 커플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사진을 모티브로 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같이 작업을 하던 친한 친구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작업을 계속해라’는 쪽지와 함께 친구가 좋아하던 음악, 책 등이 남겨져 있었다. 처음엔 친구와 취향이 많이 달랐지만 점점 이 오브제들에 관심이 가고 생각도 바뀌면서 친구의 작업에 자신의 작품을 더한 작업을 전개하게 됐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이지만 “희망찬 내일을 위해 꿈꾸자”거나 “미래를 위해 전진하자”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오히려 희망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지만, 막상 ‘희망’이 ‘현실’이 됐을 때 또 더 나은 환경을 꿈꾸고 또 전진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꼬집는다.
전시장에서 이처럼 사람들이 꿈꾸는 이미지와 실체가 지닌 차이를 드러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 예로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인 폰다의 이미지 ‘고민마, 메이크업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잖아’가 있다. 제인 폰다는 영화배우이자 건강 전도사로 유명하다. 알고 보면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인 운동가 면모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서 실체와 이미지의 차이가 생긴다.
▲처음엔 색이 진했지만 시간이 점점 가면서 색이 바래가는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제인 폰다의 무수한 이미지 앞에 전시돼 있는 원피스 또한 그렇다. 이 원피스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갱 두목의 모습이 프린트돼 있다. 그런데 이 갱 두목 사진이 공개됐을 당시에 잘생긴 외모로 화제가 됐고 추종 무리까지 생겼다. 영화 ‘나는 살인범이다’처럼 실체는 무서운 범죄자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치중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된 작업
작품들은 곳곳에 분산돼 설치돼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언급된 갱 두목 사진의 경우 다른 쪽 벽면에 있는 티셔츠 작품과 연결된다. 이 티셔츠에는 극악무도했던 연쇄살인범 커플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이들이 재판을 받고 나올 당시 담배를 피울 때 찍힌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박은정 작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이미지와 실체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사진 속 양파 또한 전시를 시작하면서 놔둔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썩어가는 등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사람들은 그림 같이 잘생기고 예쁜 연쇄살인범 커플의 이미지에 열광했고, 심지어는 “마치 제임스 딘을 보는 것 같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연쇄살인범 커플을 모티브로 한 티셔츠, 앨범재킷 등도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전시장을 잘 둘러보면 작품과 작품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TV, 스마트폰, 인터넷 등으로 무수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지만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궁금해 하면서 전시를 추리해가듯이 즐겁게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전시장 안뿐 아니라 바깥에도 이어진다. 박은정 작가가 런던에서 한국에 올 때 가지고 옷 씨앗들을 화분에 심어 놓았다. 이 씨앗들이 점점 자라면서 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첫 시작은 친구의 작업에서 이어졌지만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처럼 사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노력했다. 작가는 “실체와 이미지가 다르다는 모순적인 것을 짚어내 또 하나의 시선을 던진 것이지, 이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런 현상들을 발견하고 작품에 담는 그 자체 또한 재미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작가가 던진 시선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전시를 보고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것으로도 좋은 것이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챘다면 그것 또한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묘미다. 전시는 스페이스비엠에서 10월 15일까지 열린다.
- 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