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흐린 이미지 교차, 반투명의 복합적 이미지 연출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하나의 대상에게 보냈던 시선들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이재용(45)의 작가적인 문제의식이다. 지나간 시선들을 기억을 통해 현재 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사진의 정지된 순간성에 계기적인 시간성을 부여하는 활동이다.
사물 혹은 사태의 정체성은 그것을 바라보던 시선 하나하나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뚜렷한 윤곽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시간적인 계기가 공간적으로 변형 혹은 수렴된 결과로서 모호하게 나타난다.
과거의 파편적인 시선들은 기억을 통해 현재 안에 집결하여 ‘중첩된 하나’로 떠오른다. 이재용의 겹치기(중첩) 작업은 이렇게 사물을 보는 시각에 대한 인식론적 반성에서 비롯한다.
겹치기 작업은 하나의 오브제, 이 경우에는 정미소를 중심에 두고 그 주위를 돌면서 촬영한 결과물들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시간적 계기 속에서 배열된 이미지들은 형태와 색채에 대한 작가의 미적 감수성을 통하여 취사선택된다.
▲Memories of the Gaze, 2012, Gyerim Rice Mill
먼저 표준 이미지를 바탕에 깔고 서서히 각각의 컷들의 농도 혹은 투명도를 조절하면서 작가가 원하는 조형과 색감을 탐색해 나간다. 이러한 재구성의 과정은 형사가 범인의 몽타주를 완성해 가는 방식과 흡사하게 선택과 배제가 반복된다.
이에 따라 맑은(淸) 이미지와 흐린(濁)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채화 같은 깊이를 갖는 반투명의 복합적 이미지가 출현한다.
기억 속에 있는 사물의 실상은 흐릿하다. 기억 속 사물의 공간성은 시간으로 인한 차이를 떠나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Memories of the Gaze, 2012, Gangjaeng-ri Rice Mill
대상을 애써 의식으로 고정시키려 하는 분할선은 시간의 지평 안에서 부단히 흔들린다. 그것은 명료한 선으로 구획되지 않는다.
대상을 애써 의식으로 고정시키고자 하는 분할선은 부단히 흔들린다. 중첩의 이미지는 비단 정미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억 속의 모든 대상은 시간적인 경과의 집합체로서 산란하고 모호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실재(reality)의 시간화는 사물의 실상에 접근하는 데에서 불가피한 조치이다. 다(多)시각적인 접근을 통해 사물의 실상에 근접해 가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렇게 해서 모호성(ambiguity)의 이미지가 탄생한다.
▲Memories of the Gaze, 2012, Mokcheon Rice Mill
기억 속의 실재는 ‘유연한 울타리’의 양상을 띠고 존재하는 가상이다. 자유롭게 변형되면서도 특정한 방향을 지향하는 중첩된 이미지가 대상의 실상이다. 이재용은 기억 안에 있는 사물의 시각적인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인화된 사진을 핀홀 카메라로 다시 찍어
한편, 이재용 작가의 ‘자기분석(Self –Analysis)’ 시리즈는 작가가 어렸을 적부터 꿔온 꿈속의 내용을 수집하여 이를 바탕으로 자신 안에 존재하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의 재현을 통해 고착하여 또 다른 자신의 무의식적인 정체를 현실로 이끄는 작업에 관한 것이다.
꿈이란 것이 대단히 사적인 방식으로 작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자신의 여러 측면을 알게 해주는데, 이를 의식이라는 일각을 떠 받치고 있는 무의식이란 거대한 본체를 꿈이라는 거름종이를 통해 거르고 그 꿈의 자료를 통해 무의식을 의식세계로 끌어 올리는 자기분석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Memories of the Gaze, 2012, Siksan Rice Milll
오랜 시간 광고나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세트를 만들며 작업해온 이재용은 ‘자기분석’ 시리즈에서도 그 작업방식의 연장선 속에서 작업을 했다. 그는 세트처럼 현실의 공간에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진으로 내용을 포착한 후 몽환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인화된 사진을 다시 한번 핀홀(pin-hole) 카메라로 찍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방식을 가미하면서 그의 꿈들이 재현되며 작가의 독특한 색채감이 부여된다. 그의 잔잔하지만 강렬한 이미지 속에는 스쳐 지나간 기억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자뷰 (dejavu) 같은 현상을 느끼게 한다.
▲Memories of the Gaze, 2012, Wacho Rice Mill
이재용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 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산업미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98년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 이 후 유럽과 서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가했다.
짧은 작가 생활 이 후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현재까지 영화 포스터 작업 및 광고 작업을 펼쳤다. 주요 작업으로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여고괴담2번째’, ‘무사’, ‘비열한 거리’ 등 다수의 영화 포스터 작업들이 있다. 그는 현재 스튜디오 별과 별 프로덕션을 운영 중에 있다.
- 유헌식 문예비평가 단국대 교수 (정리 = 왕진오 기자)
유헌식 문예비평가 단국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