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사스·장국영 죽음과 타자(他者)와의 관계
아르코미술관 국제교류전 ‘역병의 해 일지’
▲‘2014 아르코미술관 국제교류전-역병의 해 일지’ 전시장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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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홍콩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은 충격을 안겨줬다. 공기로 퍼지는 전염병인 사스(SARS)가 퍼졌고, 중국의 대스타였던 장국영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어찌 보면 동 떨어져 보이는 이 두 사건은 뜻밖의 지점에서 연결됐다.
사스가 퍼졌을 당시 홍콩 사람들은 전염되지 않기 위해 각자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문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타자와의 접촉을 꺼리던 그들이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뒤 마스크를 끼고 시내로 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 두 사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역병의 해 일지’ 전시의 출발점이 됐다.
‘역병의 해 일지’는 전시가 순회하는 각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재구성되고 또 그 내용이 확장되는 전시다.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세 번째 순회 전시로, 첫 전시는 2013년 홍콩 파라사이트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각기 다른 시대와 여러 사회에서 항상 등장하는 이질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와 거기서 생기는 ‘선입견’과 ‘배척’을 다루고 있다.
▲홍콩의 페르소나인 장국영을 기념하는 팬들의 소지품이 아르코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영국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1665년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대니얼 디포의 소설 ‘역병의 해 일지’에서 인용된 전시제목 또한 이런 맥락에서 지어졌다. 1894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흑사병의 근원균이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홍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서구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더러운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됐다.
전시는 이처럼 실제 역사적 사실 속에 존재했던 선입견과 고립, 타자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 등을 보여주고 현재는 과연 괜찮은지,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건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과 작가가 주가 되기보다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던져주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2층엔 홍콩을 중심으로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양쪽 벽에 크게 걸려 있는 각종 영화 포스터들을 잘 살펴보면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고상하게 그려져 있는 백인의 모습과 달리 아시아인은 비열하고 음습한 습성을 가진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이는 서구 사회가 과거 아시아에 가졌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홍콩의 페르소나인 장국영을 기념하는 팬들의 소지품 등을 선보이며 동시대 예술작품과 함께 전시가 다루는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으로 생긴 현상을 재조명한다.
▲‘역병의 해 일지’ 전은 실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며 그 속에 담긴 선입견과 타자화 문제를 짚는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전시는 선입견으로 시작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는 국가적으로 확장됐을 때 더욱 갈등이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고 심하게는 이용하는 타자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만보산 사건(1931) 또한 그 점을 짚고 있다. 이 사건은 일본총독부가 만들어낸 오보로 한국농민과 이주 중국민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됐던 사건으로,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를 과격하게 자극해 배척할 대상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에 담긴 선입견·타자화 현상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면 이번 한국 전시에서 추가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북한을 상징하는 김정일이 홀로 서 있는 작품, 동아시아의 섬을 둘러싸고 자주 보이는 영유권 분쟁에 관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제임스 T. 홍의 투채널 영상 작품, 베트남 전쟁에서 호랑이를 잡은 뒤 승리의 웃음을 짓고 있는 맹호부대의 모습을 담은 임흥순의 작품, 나병에 걸린 사람을 가뒀던 공간 등 그저 가볍게 보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작품은 직간접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 속 담겨 있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1978년 제작된 반공 애니메이션 영화 ‘똘이장군’이 전시돼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한국 전시를 준비한 전효경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크게 선입견과 그 선입견으로 타자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타자를 배척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며 “홍콩에서 벌어진 큰 두 가지 사건에서 시작된 전시의 주제 확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보면 전시를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전시를 보고 이전엔 그냥 지나쳤던 현상들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거나 반성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아르코미술관 제1, 2 전시실에서 11월 16일까지 열리고 관람은 무료이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