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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예술이 사기라면 큐레이터는 사기꾼인가?

“예술이란 속고 속이는 것이다” 백남준 작가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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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0호 신민 진화랑 실장⁄ 2014.10.16 08:48:3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백남준 할아버지가 남긴 명언 “예술은 사기다”는 예술의 의미나 가치에 딴죽 건 이들이 할 말을 잃게 하는 시원한 한마디다. 사기라고 인정하는 데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해서 얼떨떨하게 하는 것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말한 예술인데 거기에 돌을 던질 것인지 박수를 보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예술에 대해서 일반인이 가장 많이 꺼내는 말을 집계하면 아마 우선순위에 “예술을 잘 모르겠다. 그 다음은 “왜 그렇게 비싸?”, 세 번째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일 것이다.

현장에서 일을 한 초기에는 사람들이 막 던지는 얘기에 때마다 격분했다.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구시렁거리면 “이 작가님은 평생 이것만 하셨잖아요!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몇 년의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었으니 그 값을 인정해 주어야죠!”라고 답하고 나서도 후련하지가 않아서 끙끙대던 날들이 있었다.

한번은 금융계 대표들을 만난 자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나라의 돈이나 외국기업의 거액을 투자 받도록 하는 일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사실 요점을 따져보니 그 일은 수수료를 얼마나 많이 남겨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즉, 투자 받을 콘텐츠의 가치를 얼마나 어필하느냐에 따라 성패여부가 갈린다. 미술품 투자와 사실상 유사한 메커니즘이다.

작품 가격이 600만 원인 작품을 판매해서 기분이 좋다는 나의 말에 이어진 그들의 대화 “캔버스랑 물감 값 합쳐서 그럼 원가는 60만 원 정도겠네. 이야 꽤 마진이 남는 장사인걸. 우리도 해볼까. 좀 싸게 줄 수 있어?” 는 당시 지금보다 더 순수하고 맘 약했던 내게 꽤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촌스럽게도 대응을 해버렸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을 위해 몇 주 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열심히 카네이션을 만들었어요. 그럼 그건 색종이 값이 500원이니 그 원가가 500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돈으로만 책정할 수 없는 가치죠. 미술작품의 가치는 물질의 문제를 넘어 감정적 가치! Emotional Value! 가 합산되는 거라고요!”

▲아라리오뮤지엄 제주 탑동시네마에 설치된 가오 레이의 작품. 사진 = 왕진오 기자


“명품을 생각해봐요. 그렇게 따지면 동대문 뒷골목에 가서 짝퉁을 사는 게 훨씬 이익이지 모하러 값비싼 명품을 사요. 장인이 한 땀 한 땀 빚어낸 거니까 그 땀방울 값을 사는 것이 뿌듯한 거잖아요. 작가들은 오직 그것에 몰두해 온 장인이죠. 죽었다 깨도 그 영혼, 그 손길을 흉내 낼 수 없어요.”

그 후 연식이 쌓이면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일일이 정성스럽게 대응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에이. 모 그렇게 까지 의미가 있어 이게? 억지 아니야?” 하면 그저 너털웃음으로 “그죠. 어차피 예술은 사기라는 거 아시잖아요.” 로 끝내 버린다. 그럼 기가 막히게도 오히려 더 흥미를 갖는다.

더 이상 사기죄를 추궁할 수가 없으니 선택의 길이 빨리 펼쳐진다. 같이 갱단 일원이 되거나 겁나면 재미있는 세상 하나 놓치거나.

▲조지 콘도, ‘The Arrival’. Oil on canvas, 119.38 x 100.33 cm, Copyright George Condo 2014.


미술품 가치는 물질 넘어 감정적 가치(Emotional Value)가 합산

보통 완전히 문외한일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존중하지만 무조건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면 자신의 예산에 맞게 즐길 작품을 찾는다.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고 나면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싸게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은 갤러리스트를 사기꾼으로 느껴지게끔 하기도 한다.

예컨대, 백남준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면 훌륭한 사람줄 쉽게 인정하면서도 작품인지 고장 난 기계들 더미인지에 대해선 낯설기만 하다. 그러다 그의 세계적, 미술사적 위상을 이해하게 되면 작품이 대단해 보이고, 소장 욕심까지 가지게 된다.

필자 같은 월급쟁이는 유명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허세와 현실적 예산의 적정한 지점인 판화를 구입하기도 한다. 소장가치가 크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게 된 이들 중 경제력이 뒷받침 되면 백남준의 어떤 작품이라도 원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여러 갤러리나 딜러들을 통해 가격비교를 하면서 최선의 거래를 달성한다.

얄밉지만 야무진 컬렉터들 일수록 내가 아무리 적정가를 제시해도 무조건 너무 가격이 높다는 식으로 사기꾼 취급을 해서 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리려고 한다. 누가 날강도이고 사기꾼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예술이 사기라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믿도록 열을 올리는 큐레이터는 사기의 사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시장가를 지나치게 부풀려서 작품을 판매한 후 소송을 당하는 딜러들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롱런의 지혜가 없는 아마추어일 확률이 높다.

▲아라리오뮤지엄인 스페이스에 설치된 김창일 컬렉션. 사진 = 왕진오 기자


역으로 컬렉터가 투자가치에만 목을 매다 보면 아마추어 사기꾼인지 프로 갱단인지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냥 할아버지 말에 귀 기울여 보면 의외로 답은 단순하다. “예술은 밋밋한 이 세계에 양념과 같은 것이다. 이 상투적인 세계에 그나마 예술적 충격이 없으면 인간들은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예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조한 세상이 재미없다 보니 예술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위대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예술이란 속고 속이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다.”

(CNB저널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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