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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이 바라보는 ‘거주풍경(居住風景)’]사람이 행복한 도시를 꿈꾸다

획일적 아파트는 터무니없는 삶, 무늬와 정체성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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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0호 안창현 기자⁄ 2014.10.16 08:51:13

▲건축가 승효상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휴머니즘 건축가 승효상은 늘 “획일적이고 평면적인 사고를 만드는 도시가 아닌 그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고민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20세기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그의 건축철학인 ‘빈자의 미학’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세계미래포럼에서 주최한 제63회 미래경영콘서트 강연자로 선 그는 단지 보기에 좋은 건축물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배려하는 건축과 도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건축가 승효상은 거장 김수근 문하에서 15년간 일했다.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는 ‘서울건축학교’ 설립에 앞장서기도 했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총괄하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일선에서 건축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왔다.

이런 활발한 활동에는 건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바탕이 됐다. 잘 알려진 ‘빈자의 미학’이다. 자신의 건축철학을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소개했다. 또 이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 선조들의 오랜 지혜에서 비롯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먼저 서양에서 도시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암브로지오 로렌제티의 ‘좋은 정부의 도시’라는 프레스코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왼쪽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는 촘촘한 건물들 사이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오른쪽 성벽 밖은 우울한 색채에 토지를 일구는 농민들의 표정 또한 어둡다. 이 그림에서 농촌은 도시민의 착취의 대상으로 보여진다.”

서양에서 도시는 오랫동안 성벽 속에서 형성된 계급적 공동체였다고 그는 말했다. 한 지역을 성벽으로 한정하고 그 안에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도시, 이는 성벽이 없어지는 18세기 무렵까지 무려 반만년이 넘는 기간 줄곧 계속된 서양의 원형적인 도시 모습이었다.

그는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는 중세 유럽에서 황금기를 맞았다고 했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두른 중세의 도시들은 방사형 구조를 가졌다. 이를 통해 위계적 질서를 만들고, 가운데는 영주의 궁을 두어 단일 중심을 이룬 폐쇄적 조직을 형성했다.”

서양에서 도시의 성벽은 18세기 말엽에 와서야 프랑스 시민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허물어지게 됐지만, 위계적인 구조를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성벽이 무너진 도시에 농민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몰려들었지만, 이들이 기회의 땅으로 여긴 도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시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 등으로 구획되었다.”고 설명했다.

▲9월 25일 세계미래포럼에서 주최한 제63회 미래경영콘서트.


물론 서양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 드문 경우가 있었다. 그는 그런 사례로 인도의 폼페이를 들었다. “폼페이는 완벽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의 도시계획자들이 봐도 놀라울 정도다.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이미 모두 갖추고 있다.”

700년 역사에 2만명이 거주하던 폼페이는 교역의 중심지였고, 휴양의 도시로 문화예술이 꽃피운 도시로 유명했다. 이상적인 도시의 모든 요소가 2000년 전의 폼페이에 다 있었다는 얘기다.

“이 도시에는 빈자와 부자, 낮은 자와 높은 자 등 모든 신분과 계급이 공존했다. 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은 완벽했고, 시민들은 모두 손쉽게 공공시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완전한 도시 폼페이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어 멸망한 것은 아닐까.

도시와 건축은 오래 전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삶의 공간이었다. 세계 인구의 도시지역 거주 비율은 2010년 50%에 달했고 2050년에는 75%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건축가 승효상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거주풍경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무늬를 간직한 도시 환경을

“기본적으로 서양의 도시 계획은 투시도법에서 비롯했다. 중세의 봉건 영주와 같은 독점적인 시선을 통해 도시 형태를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다른 방식은 없을까? 우리 선조들은 서양과는 다르게 세계의 중심은 하나가 아니고, 모든 사물이 각각 다른 중심을 가졌다고 믿었다.”

승효상은 서양의 시선을 조금만 벗어나면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빈자의 미학’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어릴 때 볼 수 있었던 달동네 모습은 건축적으로 무궁무진한 지혜를 담고 있다. 남루하고 초라해서 그렇지, 그곳에서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면서 살았다.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삶의 지혜를 배우는 미학이다.”

그가 평생의 건축적 화두로 삼고 있는 ‘빈자의 미학’은 이렇게 서양의 추상적이고 물질적인 도시 형태를 벗어나 한국의 오랜 지혜가 깃들어 있는 삶의 형태를 추구했다. 그는 도시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서로 공유하는 건축 형태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획일적인 아파트에는 우리 삶의 무늬가 없다. 우리는 현재 삶의 터에 새겨진 무늬가 없는 공간에 살고 있다. ‘터무니’ 없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모든 터마다 고유한 무늬가 있고, 그 터에는 저마다의 정체성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사회적 갈등과 반목은 건축과 도시의 모습이 잘못된 형태로 조직되면서 초래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무늬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우리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CNB저널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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