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강석호]Trans-Society·지움·지음의 공시성
고민과 성찰의 구도적 작가, 남에게 작업을 의뢰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젊은 예술가 강석호(34)는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장인이다. 화려한 미학적, 이론적 포장에 기대어 작업 대신 말을 앞세우지도, 타고난 손재주와 얄팍한 잔꾀만 믿고 고민과 성찰 없이 작품들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늘 신중하고 심각하다. 그렇다고 이성적 절제를 강조하거나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칠 만큼 세세한 것들에까지 마음을 쓰며 자신의 손과 몸을 수고롭게 하는, 시류와 트렌드에 맞지 않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우직한 예술가이다.(중략)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남의 손을 빌어 작업하고 있다. 스스로를 ‘상대적 절대자’로 규정짓고 산에서 채집해 온 흰개미들을 책과 함께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 두고 그 작은 세상의 모습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di sua mano’라는 조항을 달아 흰개미들에게 Trans-Society라는 작업을 의뢰한 셈이니 파격이고 반전이다.
▲Trans-Society #24,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65.1x45cm, 2014
대체 어떤 의도에서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걸까. 사회를 뜻하는 society에 횡단, 초월, 변화, 이전 등을 의미하는 접두사 trans를 연결시켜 만든 신조어 trans-society를 통해 드러내려는 것은 무얼까.
책은 그 자체로서 다중적인 Trans-society이다. 인간의 지적 소산인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이 인쇄된 종이의 집합, 즉 지적, 언어적, 물리적 요소들로 이뤄진 society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들을 실어 놓은 도록 역시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이 빚어낸 또 다른 다중적 Trans-society이다. (중략)
어쩌면 Trans-Society라는 작업이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개연성까지 내다보고 작업을 구상한 작가의 아이디어 자체가 초월적인지도 모르겠다.
▲Trans-Society #4,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145.5x94.2cm, 2012
하지만 흰개미들이 자의적으로 만들고 있는 자목적적, 초월적 trans-society가 이 개념미술적 시도를 통해 작가가 구현하고자 한 궁극의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결과물로서의 trans-society, 혹은 trans-society라는 개념 자체를 위한 시도였고 실험이었다면 작업을 마무리했어도 벌써 했을 것이다. 개념미술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개념이 아니던가.
▲Trans-Society #9-1,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65.1x50.3cm, 2013
흰개미들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고 거기에서 어떤 느낌을 받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개념을 반영하는 도식적 설치의 우연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Trans-Society를 선보이는 두 번째 전시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무언가를 더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더 보고 싶기 때문인 듯싶다.
▲Trans-Society #4-1,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145.5x94.2cm, 2012
흰개미들이 만드는 초월적 사회목표한 완성도가 있을 리 없는, 아니 어쩌면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영원한 non-finito 작업에 매달리고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선문답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정성 들여 빚은 도자기를 가마 안에 넣고 좋은 작품이 되길 염원하는 도공의 마음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노라고.
개념미술적 언어로 해석할 수도 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그런 미학적, 개념적 틀 너머에 있는, 예술이란 초월적인 것이라는 곰팡내 나는 케케묵은 신념을 붙들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결과, 결과물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Trans-Society #19-1,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72.7x61.9cm, 2014
어떤 언명의 체계로도 규명하기 어렵고, 어떤 논리학적, 철학적 설명으로도 완전히 해석할 수 없는 창조와 예술에의 의지. 이것이 실재함을 흰개미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Trans-Society’라는 작업의 목표이자 실존적 의미가 아닐까.(중략)
그런 점에서 이번에 소개되는 일곱 점의 작업들은 Trans-Society 작업의 기록인 동시에 작가의 kunstwollen으로 완성한 완전한 non-finito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Trans-Society #4-1’의 영(永)자가 눈에 띈다. 영원을 뜻하는 글자, 그것도 영원한 명필 왕희지가 쓴 글자가 일부 지워져 있다. 끝없이 흐르는 시간이란 개념으로서의 영원이 지워진 셈이다.
▲Trans-Society #9-2, Pigment print on cotton rag paper, 53x37.6cm, 2013
대신 그 위에는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정의한 영원, 즉 흐름이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영원이 지어진 것이다. 흰개미들이 이룬 지움과 지음의 공시성이야 말로 Trans-Society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개념이자 예술이란 초월적인 것이라는 작가의 신념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증거이다.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아무것도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는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선언에 대한 시각적, 예술적 항거이고 ‘강석호 식’ 반증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여전히 초월적인 것이다. 그것이 자명하다는 사실이 Trans-Society를 통해 자명해졌다.
(CNB저널 = 김영준 미술평론)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영준 미술평론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