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국립현대미술관 박스 프로젝트 2014]배가 미술관에 온 까닭은?
아르헨티나 레안드로 에를리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전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배가 미술관 실내에 둥둥 떠 있다. 6척의 배가 거울 같은 수면 위에 반사된 물그림자와 함께 꿈 속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1)가 가로 23m, 세로 23m, 높이 17m의 서울박스에 설치한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풍경이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환영이 오묘하게 섞여있다.
한국 전시를 위해 방한한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배라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운송과 서로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배와 항구라는 공간은 교류를 잘 상징해준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다.” 며 “우리가 어떤 인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한시적이고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미지라는 것은 찰나의 이미지에 불과하고 그것을 우리가 포착해 사유하는 순간은 길지가 않다.”고 말했다.
작가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을 전복시켜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함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을 통해 현실에 대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언어를 구축한다. 그의 작품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서울박스의 하단에는 실재 물속 같은 공간을 만들어 착시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환상이나 환영이라는 이면에는 인식과 인지가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해석이 집중하다보면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창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박스 두 번째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가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작품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현실 자체도 굉장히 가변적이고 그것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에 사용된 착시효과는 관람객들을 속이거나 기만하고자 만든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작품을 보면 물그림자가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물그림자라는 것을 믿고 환영을 통해 상상 속에 느꼈던 즐거움과 행복을 관람객들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헨티나 국가관 작가로 선정됐다. MACRO 로마 현대미술관, MoMA PS1,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해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국제적인 현대 미술작가로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을 전복시켜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함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을 통해 현실에 대한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언어를 구축해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지리적으로 먼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물리적, 문화적, 사회적 관계를 조명하고 더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분리 혹은 연합된 관계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된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사진 = 왕진오 기자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환영의 조화
전시와 더불어, 작품의 구상에서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의 과정과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된다. 또한 작품 제작과 관련된 스케치, 모형, 3-d 모델링 자료들이 추후 아카이빙의 형태로 기록해 ‘박스 프로젝트’시리즈의 서울관 아카이브 콘텐츠로 적극 활용될 예정이다.
‘박스 프로젝트’는 매년 국제적인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작가 선정위원회가 추천과 논의의 과정을 거쳐,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작가를 선정한다.
선정된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신작을 제작 설치해 약 9개월간 전시한다.
‘박스 프로젝트’의 두 번째 선정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는 2015년 9월 13일까지 서울관에서 볼 수 있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