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 - 김근태 3주기 추모전]노동과 예술의 부활
김근태 기리는 ‘생각하는 손’에 아티스트 11명 역량 집결
▲정정엽, ‘여보 하나님이 잘 해주셔?’, 캔버스에 유채 72.7x60.6cm, 201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민주화 대부, 3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집권여당 대표의장을 지냈던 고 김근태(1947∼2011) 3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전시 ‘생각하는 손’이 12월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 문에서 막을 올린다.
‘노동’ 이슈를 주요 소재로 작업해 온 11팀의 예술가가 생각하는 손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청년 김근태가 노동현장에서 딴 11개의 기술 자격증과 보일러공으로 일하던 시절 소음 속에서도 옥순아가씨(당시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던 부인 인재근 (현 의원)의 가명)에게 쓴 연애편지, 문익환 목사가 감옥에서 전해온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시의 원본, 김근태의 수첩과 강의노트 등이 아카이브로 전시된다.
김근태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밝힌 ‘따뜻한 시장경제론’에 대한 이야기가 미술인들의 손을 통해 작품화돼 관객들을 맞는다.
▲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Live’. HD 단채널 영상, 2014.
정정엽, 김진송, 임민욱, 이부록, 이윤엽, 배윤호, 옥인콜렉티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전소정, 심은식 등 11명 작가의 회화와 판화, 영상, 설치 작품 등 40여점이 함께 한다.
전소정은 ‘미싱사’와 ‘김치공장의 노동자들‘을 화면에 담는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 하는 이 시대의 장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작업 공정을 자신이 지배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궁극적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통해 노동과 예술, 모방과 창조의 경계의 대해 묻는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 2014.
이부록은 오랫동안 청계천에 버려진 철부산물들을 수집해왔다. 산업사회에서 버려진 부품들, 낙오된 부품으로 취급되어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 고속성장의 근대화 이념에서 배재된 가치를 다시금 발굴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임민욱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이근안을 찾아간 고(故) 김근태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려했습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고통의 의미란 무엇인지 고통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곱씹어봤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통의 강도나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피해자들을 통해 간직하고 싶은 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박완서의 말처럼 따스함 때문이란 걸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온도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가 작품을 통해 피력해왔던 ‘촉각적 비전’과 만나게 되는 지점에 있기를 바랍니다.”고 작품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기획에서 그는 이 버려진 유물들을 재조합해서, 현재와 다가올 미래의 시제로 바꾸어 놓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가 도달하려고 하는 유토피아가 작동 불능의 기이한 모습은 아닌지, 우리가 남길 각자의 금자탑은 실패의 업적인지, 희망의 모습인지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임민욱, ‘왜 그쪽에서 해가 뜨는지’, 적외선 램프,나무, 쇠, 가변설치, 2014.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손’이 동작을 멈추면, 우리 사회가 마비될 수 있다는 상식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손’이 생각하면서 동작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가 천천히 가라앉을 수 있다는 공포를 경험했다.
부인 인재근 여사에 보낸 연예편지 등 자료 아카이브로 전시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손’의 부활을 꿈꾼다. 노동과 시장에 대한 화두를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미술가들이 ‘생각하는 손’을 움직여주었다.
11팀의 미술인들이 모여 자신들이 ‘생각하는 손’을 움직여서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미술로써 김근태를 애도하고 그의 꿈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추모전시다.
이번 전시는 추모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관람객 각자가 노동과 이 시대의 생각하는 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있는지 느끼는 자리로 기억되길 바란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