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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새해 첫날, 큐레이터의 밥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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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2-413호 신민 진화랑 실장⁄ 2015.01.15 08:55:0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신민 진화랑 실장) 새해를 맞아 제주가 고향인 필자가 가족들과 떡국을 먹으며 나눴던 새해 준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아버지: 올해 계획은 뭐니?

신 큐레이터: 영어공부, 일어공부, 책 출판, 특강, 4작가의 개인전 준비, 뉴욕 소더비 Summer Study, 두 번의 아트페어 준비, 도쿄 아트페어와 홍콩 아트페어,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오는 거예요. 요리하는 시간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맛집도 더 많이 가보고 싶고.

가족들: 포부는 어마어마하네.

신 큐레이터: 결국 아는 게 다양해야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내용도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버지: 그래, 호랑이를 상상해야 고양이라도 그리는 거야. 못할 것 같다고 괜히 기준을 낮게 잡을 필요는 없어.
오빠: 너 얼마 번다고 그랬지?(큐레이터로서 꿈 얘기를 하면 자리를 막론하고 이 질문을 하는 인물이 꼭 하나씩 있다)

신 큐레이터: 00만 원…….

오빠: 넌 석사학위까지 있는데, 좀 너무 했다.

큐레이터가 아무리 일을 사랑해도 피하고 싶은 순간 베스트 1위. 얼마를 버는지 제발 물어보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올해 계획은 내 수입의 몇 배 지출이 예상되는 목록이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어느 뮤지컬 작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신은 무조건 수입의 70퍼센트 이상을 저금도 물건도 아닌 자신의 성장을 위해 소비해왔다고. 여행이나 책 또는 대학원 공부처럼 배우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예술 동네는 어디를 가도 대기업처럼 승진이나 보너스, 연봉 상승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내부에서의 경쟁이 아닌 외부로 활동 영역을 얼마나 넓히는가에 따라 개인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 다시 말해, 누가 미션을 주거나 그것을 성취하면 상승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승진은 나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곳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 현장의 관람객들. 사진 = 왕진오 기자


아버지: 네 값어치를 높이는 데 투자하면 나중엔 그 과정이 자산이 될 꺼야. 그건 누가 뺏어갈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어. 10만 원을 갖고 가게에 가면 10만원 아래 물건만이 보이지만 100만 원이 있으면 고르는 품목이 전혀 달라지잖니. 너 자신이 100만 원짜리가 되면 네가 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지는 거야. 10만 원 열심히 저축한다고 인생이 별반 달라지지는 않아. 차라리 10만 원을 자신에게 쓰면 인생의 선택권은 어느 순간 10만 원짜리가 아닐 거야.

어머니: 지금은 너 자신의 성장에 다 써버리면, 당장 풍족하지 않아 불안하겠지만 오히려 다시 채우려 더 노력하지 않겠니? 너라는 원석을 잘 다듬어 나가보렴. 보석이 되면 비로소 필요한 존재가 되고 그땐 네가 얼마를 벌어야 행복할지 말지의 고민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될 꺼야.

필자가 만들고 있는 책의 출간을 위해 교보문고 J매니저님이 항상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보석을 찾아다닐 필요 없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네가 보석이 되면 되.”

열정을 쏟다보면 분명 얻는 것은 무엇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지치고 열정을 쏟기가 무서워진다. 정체기는 한탄의 시기일 뿐이다.

나는 미술계 종사자들의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나 역시 정체기에는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버는 정도에 나를 맞춰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에 마련된 진화랑 부스. 사진 = 왕진오 기자


한동안 일에서 갑갑함을 느꼈던 이유는 스스로의 에너지가 떨어진 탓이다. 기차로 치면 연료가 부족해 속력을 전혀 내지 못하니 승객에게 창밖으로 같은 풍경만 계속 보게 하는 형국이다.

작년 말 전 국민을 ‘미생 앓이’ 시켰던 드라마 ‘미생’의 원작 만화 작가 윤태호 씨가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맴돈다. “만화를 업으로 하는 긴 시간 동안 빚과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지만 끝까지 버텼다”. 버티는 것이 좋은 결과의 유일한 비결이다.

멈추지 않고 버티고 있어야 언젠가 감이 열렸을 때 감나무를 흔들 기회를 잡는다. 큐레이터는 이럴 수밖에 없다가 아니라 이럴 수도 있다는 면을 꼭 한 가지라도 보여주는 역할, 새해 다시 다짐해보는 나의 궁극적 소망이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오빠가 카톡 메시지 하나를 보여줬다. 2015년이 시작되던 시간 함께 “Happy New Year”을 외쳤던 미국 변호사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동생분 다이내믹 재미있었어요. She seemed very rock solid.”

신 큐레이터: 이게 무슨 의미야?

오빠: 너와의 교류, 교감이 재미있었다는 얘기야. 너는 우울하거나 슬픈 발라드가 아니라 활기찬 록 스피릿 같은 사람이라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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