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⑪ 영등포서 여의도지구대 민새롬 순경]‘무술 11단’ 품은 여경 “주폭을 단숨에 제압”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소속 민새롬(28) 경장은 퇴근길에 만취 남성이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제지한 일이 있다. 이 일로 선행 경찰관을 선정하는 서울지방경찰청의 ‘베스트 굿 폴’에 뽑혔고, 승진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경찰관임을 잊지 말자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며 시민 돕기에 적극 나서는 민 경장을 만났다.
작년 3월 여느 때처럼 금요일 야간 근무를 마친 민새롬 경장은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 집으로 향했다. 승객으로 붐비는 버스는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갑자기 “퍽!”하고 주말 오후의 평화로움을 깨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술에 잔뜩 취한 30대의 한 남성이 버스 뒷좌석에서 강하게 유리창을 발로 차는 소리였다. 이 만취자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소란을 피웠다. 당시 승객들이 많이 타고 있어 버스기사는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운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민 경장은 “기사님과 승객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계속해 혹시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침착하게 버스 뒷자리로 자리를 옮겨 휴대폰으로 현장사진을 찍고, 앞쪽으로 피한 시민들에게 만취자가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제지했다.
이후 버스가 정류장에 멈춘 사이 도망치는 만취 남성을 쫓아 현장 경찰에 인계하기까지 민 경장은 경찰로서 시민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고 했다. 이 일로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이 매달 선행 경찰관을 선정하는 ‘베스트 굿 폴’이 되었고, 지난 연말 특진 추천을 받아 경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아마도 퇴근길에 벌어진 일이라 그 점을 높게 사주신 것 같다.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격려로 생각한다”며 겸연쩍어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면 보람될 것 같았다는 민 경장은 오래 전부터 줄곧 경찰관을 꿈꿨다.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경찰이었다. 학교에서 도덕 시간에 공자의 ‘지우학(志于學)’ 이야기를 들었는데, 15세에 이미 자기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나도 막연히 내 장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공자는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민 경장은 경찰관을 선택했다. 장래 직업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보다 일에서 오는 보람과 즐거움일 텐데, 경찰만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자신의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느꼈다.
“어릴 때 한밤중에 무슨 소리가 나면 ‘도둑이 아닐까, 가족들이 다 자고 있는데 내가 우리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 가족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보호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웃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민새롬 경장. 사진 = 안창현 기자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한 민 경장은 곧이어 합기도를 배웠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때 시작한 합기도는 어느덧 5단이 되었고 유도와 태권도, 특공무술 2단씩을 더해 지금은 도합 11단이다. 경찰관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물론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친 시험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것이다. “항상 응원해주셨던 부모님도 그때는 잠깐 만류하셨다. 젊은 나이에 공부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던 것 같다. 나도 잠시 꿈을 접을까 생각해봤지만, 경찰 제복을 입지 않은 내 모습은 상상이 안됐다.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1년 뒤 다시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2013년 1월 경찰관으로 처음 발령받은 곳이 지금 근무하고 있는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다. 민 경장은 “경찰관이 정말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 꿈을 이룬 만큼 몸은 힘들었지만, 항상 즐겁게 활동한 것 같다. 매번 다른 신고가 들어왔고, 다른 일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두렵고 긴장도 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봉사하는 삶에 보람 느껴 경찰직 선택.
“여경” 편견 깨려 현장서 적극 대처여의도지구대는 근처에 한강 다리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자살 기도자 신고가 많은 편이다. 하루에 평균 1, 2건 정도는 자살 기도자 구조 출동을 한다. 민 경장은 최근에도 강원도에서 온 한 여고생이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려 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난간에 매달려 있던 것을 억지로 떼어내 순찰차에 강제로 실어 데려왔다. 처음에는 학생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여성이라 내가 좀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이 여고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컸다. 민 경장은 언니처럼 인간적으로 대하며 불안해하는 여고생을 진정시켰다.
민 경장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화하면서 용기를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는데, 나처럼 경찰이 되겠다고 한다”며 뿌듯해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경찰관 되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구대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보니 갈수록 힘이 부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쉴 때에도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민 경장은 여경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깨고 어떤 현장에서든 자신감을 가지고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