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사회적기업가센터 이병태 센터장.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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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사람이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사회적기업가이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투자도 결국 사회적기업가의 역량을 보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회적기업가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먼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사회적기업가로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사회적기업도 엄연한 기업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이 때문에 한국의 많은 사회적기업과 기업가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적 가치를 갖춘다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가에게도 기업가로서의 경영 능력이 최우선 조건이다. 이런 경영 능력이 사회적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
SK사회적기업가센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유례가 없는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을 KAIST 경영대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KAIST 교수이기도 한 SK사회적기업가센터 이병태 센터장을 만나 활동과 KAIST MBA 과정에 대해 들었다.
‘사회적기업가 MBA’ 프로그램은 SK그룹과 KAIST 경영대학원의 합작품이다. SK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일찍이 사회적기업에 주목했다. SK 내부적으로 사회적기업을 위한 인재육성 방법을 고민했고, 사회적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을 MBA 과정처럼 운영하고자 했다. 혁신적 인재를 많이 배출해 이들을 실제 사회적기업가로 키워내자는 착안이었다.
이병태 SK사회적기업가센터장은 “KAIST의 사회책임연구센터 등에서 이미 사회적경제에 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러던 중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기업가 육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에도 사회적 문제 해결에 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봤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준비된 사회적기업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많은 사회적기업이 생기면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했지만, 그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우후죽순 사회적기업이 양산된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공적 자금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금이 끊기면 자립 못하는 사회적기업들이 많았다.
▲SK그룹이 설립을 지원한 사회적 기업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2006년 결식 이웃에게 무료도시락을 제공하는 사업을 저소득층 인력채용으로 이뤄내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2007년 ‘하버드 아시아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우수사례로 소개됐다. 사진 = SK 행복나눔재단
이런 마당에 사회적기업가를 위한 세계 최초의 정규 학제인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은 2012년 10월 태어났다.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지속시킬 혁신적 사회적기업가 양성이 목적이었다.
이 센터장은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의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교과과정이나 창업과정 등 커리큘럼을 모두 새로 개발해야 했다. 일반 MBA 과정이 주로 미국의 학제를 참조했다면 사회적기업가 양성 MBA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교육뿐 아니라 실제 사회적기업의 창업 과정까지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을 개설하면서 KAIST 경영대학원 안에 SK사회적기업가센터를 만들어 연구활동과 창업지원을 했다. 또한 SK행복나눔재단과 최태원 회장의 지원으로 청년창업투자지주 회사를 설립해 사회적기업 창업 청년들에게 초기 자금을 지원해주는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사회적기업가 MBA만의 특색: 혁신성
이 센터장은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구상하면서 사회적기업에 꼭 필요한 혁신성에 주목했다. 혁신이 있어야 사회적기업이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핑계로 수익 측면에서 의존적이 되기 쉬운 게 사회적기업이다. 기업 운영을 정부 지원금에 주로 의존하고, 시장에선 사회적 가치를 내세워 소비자에게 불만족스런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 결국 도태된다.”
SK사회적기업가센터에 현재 입주해 있는 사회적기업 ‘제로디자인’은 KAIST의 이런 철학을 확인시켜준다. 제로디자인은 생활에 밀착한 공학기술을 보급해 소외계층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제로디자인의 김영진 대표는 2012년 두 차례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캄보디아인들은 일상적으로 범죄와 안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으며, 가내 수공업을 생계수단으로 하는 가정에선 전력 불안 탓에 야간작업을 못했다.
호롱불 사용 가정에선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이에 제로디자인은 태양광을 연결해 손쉽게 더 밝은 빛을 사용할 수 있는 멀티 태양광 전등 기술을 개발했고, 현재 캄보디아와 부룬디의 전기 없는 지역에 태양광 전등을 대여하는 사회적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센터장은 “따뜻한 사람들이 따뜻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열정에다가 기술과 디자인, 참신한 아이디어 등 혁신성을 접목시키는 게 KAIST 과정의 특색”이라고 말했다.
▲KAIST 사회적기업가 MBA 세미나 현장. 사진 = SK 사회적기업가센터
참을성 있는 자본과 임팩트 투자 끌어줘
사회적기업가 MBA의 목표는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는 것이다. 창업 연계 과정이기 때문에 각종 지식은 물론 실제 창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까지 제공한다.
학생들은 첫 학기에 자신의 사회적 미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계속 발전시키고 실행해나간다. 사회적기업가센터는 사회적기업 창업 프로세스를 △사회적 미션 수립 △비즈니스 모델 수립 △비즈니스 모델 액셀러레이팅(Accelerating) △스타트업(Start-up) △스케일업(Scale-up) 5단계로 지원한다.
사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사업아이디어를 짜내고,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실행력을 키워주고, 회사를 시작해 성공모델을 점차 키워나간다는 5단계 절차다.
창업 인큐베이팅 단계에서는 사무실 공간과 공동 사무기기 등 인프라를 구비해 놓고, 창업과 사업 운영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과 만나 실무 멘토링을 받도록 한다. 센터 산하의 청년창업투자지주 회사는 투자 유치 기회를 제공하면서 창업 초기의 실패율을 낮추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경영 지원을 한다.
이외에도 사회적기업의 현장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해 다양한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을 전달한다. 이 센터장은 “한국의 많은 산학협력단이나 창업지원 프로그램들이 실패하는 큰 원인은 사업을 해보지 않은 교수들이 과정을 주도한다는 데 있다”며 “우리 멘토링은 현장의 사업가가 직접 참여한 가운데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이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점은 또 있다. “한국에는 창업 초기에 투자하는 금융자본이 없다. 신생 벤처는 어느 정도 성공해 그 가능성을 보이고 나서야 겨우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 청년들은 창업 때 가족 또는 지인으로부터 자본금을 마련한다.” 한번 창업은 할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 계속 도전에 나설 수 없는 여건이다.
이 센터장은 “통계적으로 미국 또는 창조경제가 잘되는 이스라엘에선 벤처사업가가 4번 정도 실패한 뒤에야 성공한다. 반면 우리는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영원히 낙오하기 마련”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일반 기업보다 사회적기업 운영은 더 어렵기 때문에 당장의 수익성에 얽매이지 않는 참을성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이 더욱 필요하다.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는 학생들의 사회적기업에 직접 초기투자를 해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이어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까지 유도한다.
“투자 수익률만 보고 투자하는 게 기존 투자라면, 임팩트 투자는 사회의 혁신, 사회적 가치를 감안해 투자하는 형태다. 그러니까 수익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문제 등 우리 정부나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투자하는 식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SK행복나눔재단을 비롯한 기업들의 사회공헌(CSR) 자금이 투자자금을 조성하고 있고, 서울시가 만든 투자자본도 있다. 이 센터장은 “이런 임팩트 투자기관들이 혁신적 사회적기업에 2차, 3차로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건전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적 교류 프로그램으로 열린 ‘사회적 기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임팩트’ 주제 강연 시리즈 현장. 사진 = SK 사회적기업가센터
“1기 졸업생 배출했으니 이제 본격 시작”
SK사회적기업가센터가 설립되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센터장은 그동안의 성과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2013년 봄학기에 첫 입학생을 유치했으니 아직 그 성과를 논하는 것도 시기상조다.
이 센터장은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을 거친 학생들이 제안한 사회적기업이 다른 사회적기업과 얼마나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 혁신적인 사회적기업을 위해 SK와 KAIST, 그리고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제 1기 학생들이 졸업하므로 한 사이클이 돌았다”며 “한국의 사회적기업 생태계 속에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모토 ‘Bang the world with social inovation!(사회적 혁신으로 세상을 흔들어보자!)’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KAIST 사회적기업가 MBA에 입학하려면?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의 입학 대상은, 사회적기업 창업을 계획하고 있거나 이미 창업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 또는 기업이나 정부 등의 후원을 받아 MBA 과정 이후 사회적기업 관련 업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지원하려면 다음 지원자격을 갖춰야 한다.
먼저 KAIST 경영대학원의 공통 지원자격인 학사 이상 졸업, 그리고 2년 이내 받은 공인영어성적(TOEIC 720, TEPS 599, IELTS 6.5, IBT 83, PBT560, CBT 220점 이상)이 있어야 한다.
또한 1부 이상의 추천서를 제출해야 하며, 추천인은 지원자의 사회적기업 관련 경험과 비전, 능력, 관심 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 관련 분야 종사자’, ‘지도교수’ 또는 ‘직장상사’ 등이어야 한다.
사회적기업 창업 경험이나 활동 경험이 많지 않아도 위 요건을 갖춘 뒤 지원자가 풀고자 하는 사회적 이슈가 있고 그것을 해결할 창업 의지와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2014년을 기준으로 합격자들의 직장 경력은 평균 4년 정도였다. 무경력자 25%, 5년 미만 경력 60%, 5년 이상 15%였다. 무경력자는 대학 때 또는 졸업 뒤 사회적기업 관련 활동/창업 경험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넘어 사회적기업 활성화로 가자”
SK 최태원 회장이 펴낸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 빈부 격차, 청년 취업, 노인 복지, 취약계층 고용, 환경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그 층위가 복잡하고도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 조직이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해결 주체들인 정부, 비영리 조직, 영리 기업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긴 마찬가지다. 최태원 회장은 이러한 문제의 ‘맞춤형 해결사’로서 사회적기업에 주목한다.
최 회장은 이 책에 대해 “사회적기업 활동을 한 나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희망과 아이디어를 정리했다는 의미에 더해, 앞으로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종의 출사표와 같다. 앞으로 나는 영리 기업을 경영하면서 활발한 CSR 활동과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통해 사회 공헌을 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책에서 최 회장이 지난 5년간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지원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정리했다. 왜 사회적기업이 필요하고, 사회적기업은 지금 어떤 상황에 있으며, 지속가능한 사회 문제 해결 방안으로서 사회적기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현장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만큼 정부가 보상주는 SPC 도입하자” 제안
최 회장이 사회적기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한 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포럼에서였다. 기존 기업의 사회공헌(CSR) 활동을 한 차원 발전시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회 문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하던 방안을 모색하던 중 사회적기업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후 사회적기업 육성 자금을 조성하고 행복나눔재단 내에 전담 조직인 ‘사회적기업 사업단’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적기업 활성화 사업에 나섰다.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16개의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기업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최 회장은 이 책에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센티브 제도, 즉 ‘SPC(Social Progress Credit)’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SPC는 사회적기업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키는 일종의 보상으로, 기업이 매년 결산을 통해 납부할 세금을 정하듯 사회적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그 사회적 가치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사회적기업에 유가증권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공동체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상금 같은 개념이랄 수 있다. 최 회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기적 동기에 기초한 인센티브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타적인 사람들이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을 배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책 전반에 걸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을에 들끓는 쥐를 잡기 위한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고민을 우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여기서 쥐는 각종 사회 문제, 덩치 큰 사자는 정부, 쥐를 보면 짖어대기는 하지만 잘 잡지 못하는 개는 영리 기업, 날쌔게 쥐를 잡는 고양이는 사회적기업을 가리킨다.
그는 결국 사자와 개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뿐더러 생선이라는 인센티브를 따로 주지 않아도 알아서 쥐를 잡는 고양이에 주목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양이, 즉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