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⑬ 남대문서 태평로파출소 이성정·김종우 경찰관]맥박끊긴 노숙인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내
“안전사고로부터 시민 지키는 것도 경찰 임무”
▲서울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 소속 이성정 경위(왼쪽)와 김종우 경사.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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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필리핀 세부의 한 리조트에서 의식을 잃은 8세 어린이를 구한 경찰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족들과 휴가차 필리핀에 갔던 한국 경찰관이 그곳 수영장에 빠진 아이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것이다. 얼마 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서울 도심에서 일어났다. 을지로 지하상가 계단에 한 남자가 의식불명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의 이성정 경위(45)와 김종우 경사(33)가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살렸다. 날씨가 추워지면 외출 때 지병이 악화되는 환자들 또는 술 마시고 쓰러진 주취자들이 늘기 마련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119구조대 역할까지 능히 해내는 만능경찰관 이 경위와 김 경사를 만났다.
1월 4일 서울 중구 을지로 지하상가 계단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현장 인근의 이성정 경위와 김종우 경사가 함께 출동했다. 김 경사는 “처음에 출동할 때는 구토하고 쓰러진 단순 주치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겨울철에는 지하상가에 노숙인과 주취자들이 많이 모여 이와 유사한 신고들이 자주 접수된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해 쓰러진 남자의 상태를 보니 맥박과 호흡이 없었고, 동공도 풀려 있었다. 지하상가 경비원은 119구조대에도 함께 신고했지만 구조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김 경사는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해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이 경위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던 119구급대원들을 안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쉽게 맥박이나 호흡이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김 경사는 119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 김 경사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상황에서 실행하기는 처음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배운 대로 하려 노력했지만, 막상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잘못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쓰러진 남자의 상태는 워낙 좋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했고, 이 경위와 함께 도착한 119구조대원들도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한동안 심장 압박을 계속해야 했다. 인근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심폐소생술은 계속됐다.
이 경위는 “다행히 병원에서 맥박과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의식도 되찾아 위기상황을 넘겼다”고 안도했다. 의료진은 초기의 적절한 심폐소생술이 생명을 지켰다고 칭찬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 경위는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멀쩡해 주취자인 줄 알았지만, 조사해 보니 여기 지하상가에서 지내는 노숙인이었다. 이 사고 뒤 가족을 찾아 입원 중인 남자를 무사히 인계할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
▲사고 당시 급박했던 심폐소생 현장의 폐쇄회로(CC) TV 장면. 사진 = 서울남대문경찰서
경찰 생활 17년차인 이 경위는 “전에 있던 마포경찰서에서는 근처에 가정집이 많아 가족폭력이나 절도 신고가 많았는데, 여기 태평로파출소에서는 아무래도 노숙인 관련 신고와 사고들이 많다. 더구나 이런 긴급한 상황은 흔치 않다. 함께 출동한 김 경사가 신속히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살려내 자랑스럽다”며 후배 칭찬을 잊지 않았다.
이 경위의 말처럼 현장에서 경찰이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119구조대가 함께 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현장 위치가 적절히 신고되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정확한 위치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 경사는 “경찰에서 정기적으로 심폐소생술 등의 교육을 받는다. 처음이었지만 배운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하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범죄뿐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보살피는 것도 경찰의 임무”라고 말했다.
다양한 경찰 업무에 최선…중국인 관광객 가방 찾아주기도
이 경위 또한 “어렸을 때는 범죄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는 경찰관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찰관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찰이 하는 일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술 취해 말썽 부리는 사람을 상대할 때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길 잃은 할머니를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중국인 관광객이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파출소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내일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짐이 든 여행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렸다는 것이다. 당시 이 경위는 그가 차에서 내린 장소 인근의 폐쇄회로(CC) TV 화면을 확보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꼬박 한나절 걸려 차량을 찾아 가방을 돌려줬다. 그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도움을 주고 나면 보람을 느낀다. 그 중국인 관광객들도 무척 고마워하며 돌아갔다”고 했다.
물론 피곤하고 힘든 일들이 많다. 매일 같이 파출소에 드나드는 주취자들과 정신이 성하지 않아 대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친절을 베풀어도 그 호의를 무시하거나 되레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힘들기도 하고 때론 서운하기도 하다.
이 경위는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다. 후배들에게도 경찰관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임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을 가지고 보람을 느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다”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시민들도 경찰을 믿고 격려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경사는 “선배들이 현장에 갈 때 항상 몸조심 하라고 말씀하지만 선배들의 모범을 따라 항상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