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된 사진들이 눈길을 모은다. 작품의 제목만 보고 나면 공연현장을 촬영한 기록 사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아트디렉터가 극본에 묘사된 공간을 상상력과 고증을 통해 창조하고, 등장 인물의 의복과 분장을 정교하게 설정해 한 장의 스틸 화면을 연출하듯 디오라마 기법을 통해 만들어낸 '결정적 장면'의 시각화 작품들이다.
이 장면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탈리아 사진가 파올로 벤츄라(Paolo Ventura, 47)가 자신의 초기 시리즈인 'Winter Stories'부터 디오라마(Diorama)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진들을 갖고 2월 4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바톤을 찾았다.
파올라식 디오라마 기법은 회화 중심적인 사고의 사진에 대한 상대적인 이질감의 해법을 제시한다. 사각 프레임에 포함되는 모든 이미지를 대부분 작가가 실제 제작하고 배경이 되는 평면과 삼차원 공간을 유화기법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카메라의 역할을 중립적인 관찰자 또는 일종의 아카이비스트(Archivist)로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Short Stories'는 몇장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각각의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제작돼 마치 단편소설집과 같은 구조로 엮여 있다.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안드레아 벤츄라와 그의 아들이 모든 스토리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진작가 자신이 작품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국제적 명성의 여류 사진작가 신디 셔면(Cindy Sherman, 61)이 평생 고수해온 스타일이기도 한데, 파올로는 자신이 창조한 시공간에서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를 리드하는 주역이자 해설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작이 정교한 디오라마 기법을 통해 작가가 창조된 현실이, 인간의 시각적 불완전성을 빌려 원본의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했다면, 한국에서 선보이는 'Short Stories'는 공간의 묘사는 최대한 절제하고 등장인물이 중심이 되는 구도를 설정했다.
여기에 마술사적 상상력과 구전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정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3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