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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 ‘숭고의 마조히즘’]관객엔 불편함, 작가와 기획자엔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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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7호 왕진오 기자⁄ 2015.02.12 09:02:22

▲구동희 작가의 ‘무제’가 설치된 서울대미술관 전시장.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전시장 바닥에 작품에 다가서지 말라고 쳐놓은 차단봉과 안전 바는 걸어 다닐 통로마저 없앴다. 경쾌한 음악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게 만드는 스피커 앞으로 다가서면 놀랄 정도의 굉음이 갑자기 울려 퍼져 주눅 들게 만든다.

관객의 참여가 필요충분으로 요구되는 현대미술에서 ‘참을 수 없는 관람환경’을 만들어 놓고, ‘숭고의 마조히즘’이라 이름붙인 전시의 막이 올랐다.

관객은 작가가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완전한 전시 관람을 완성할 수 있다. 자신이 한 특정한 행동 때문에 작품에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관객은 작품을 능동적으로 감상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이것은 관객이 작가의 권력 아래에서 계획적으로 부과된 임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손몽주 작가의 ‘확장-파장-연장’ 작품 속을 관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진지하게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려는 관객에게 당혹의 감성을 선사하는 이 전시는 서울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이 2월 4일∼4월 19일 진행한다. ‘피학성 음란증’으로 번역되는 마조히즘이란 단어를 사용한 만큼 평소라면 미술관을 찾지 않았을 듯한 남녀 관람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참여 작가 오용석(39)은 ‘거의 모든 수평선’이란 작품을 전시장 벽면에 투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평선의 모습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영상이다.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특정 시점에서 촬영하고, 이를 편집해 한정된 사각형의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과정에는 감독의 권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오 작가는 이 같은 영화 속 숨은 권력을 깨고 오히려 영화 속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선택해 ‘나머지’ 부분들에 집중하면서 관객에게 숨은 그림 찾기를 요구한다.

제목도 없는 작품에 관람객들이 제목을 달아야 하고…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권력관계를 ‘피학성 음란증’으로 풀어본다면?

정재연(36) 작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 안에,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 설치 작품을 풀어놓았다. 철제봉과 로프, 공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긴밀하게 연결돼 긴장감을 준다. 작가는 작품에 숨겨놓은 의미를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작품의 의미를 밝혀내는 건 철저히 관객에게 맡겨진다. 여기에 더해 작품 제목마저 관객들이 직접 벽에다 쓰라고 요구된다. 새로운 형식에 당황하고 어색해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작품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쏟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의 모든 수평선’ 작업을 설명하는 오용석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숭고’란 광활하고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말한다. 현대 예술에도 숭고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데, 관객들이 난해한 현대예술을 접했을 때 느끼는 이중적 감정이 그 한 예이다. 관객이 작품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예술 작품에 대한 감동과 매혹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작품의 일부분을 관객의 참여에 맡긴 채 전시공간에 작품을 남겨두면서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 결과와 과정에서 희열을 경험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쾌와 불쾌의 감정이 결합된 미적 체험을 숭고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이런 이중적 심리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마조히즘의 개념과 같다는 논리다.

▲‘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전시 의도를 설명하는 정재연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마조히즘이란 타인에게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성적 쾌락 또는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여기에선 고통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오가는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이 같은 숭고와 마조히즘이 지닌 상반되는 감정의 공존과 그 권력관계는 현대예술에 있어서 작가 혹은 작품과 관객 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미술관 측의 기획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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