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족’ 위한 애(愛)·식(食)·주(住) 콘텐츠 뜬다
▲‘나홀로 연애중’에 가상 연인으로 등장한 소녀시대 유리(왼쪽)와 배우 서강준. 사진제공 = JTBC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인 가구, 이른바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9%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중이 점점 늘어나 2000년 15.6%, 2015년 현재 27.1%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소형 가전제품의 매출이 급증하고, 1인 가구를 위한 시민단체 ‘한국 1인 가구 연합’도 생겼다. 그리고 나홀로족을 위한 문화 콘텐츠도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웃프게 빠져드네”
나홀로족의 애(愛): ‘나홀로 연애중’
최근 방송을 마무리한 JTBC ‘나홀로 연애중’은 연인이 없는 나홀로족을 위한 ‘웃픈’(웃기고도 슬픈)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았다.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나홀로 연애하는 프로그램이다. 매 방송마다 연예인이 가상의 연인으로 등장해 썸을 타는 과정부터 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시뮬레이션을 펼쳤다. 에이핑크 정은지, 다비치 강민경, 소녀시대 유리, EXID 하니가 가상 여자친구로 등장했고, 인기에 힘입어 나홀로족 여성 시청자들을 위한 가상 남자친구 편이 특별 편성돼 배우 서강준, 엑소 찬열이 출연했다.
1인칭 시점에서 촬영된 영상이 몰입도를 높였다. 인기스타들이 마치 실제로 나를 바라보고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호응 받았다. 화면에는 ‘처음 만났을 때’, ‘밥을 먹을 때’, ‘고백을 할 때’ 등의 상황이 나오는데 각 상황마다 여러 선택지가 등장한다. 상대 출연진이 원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호감도가 올라가지만 반대로 마이너스 점수도 있다.
진행자로 출연해 가상 연애 시뮬레이션을 체험한 성시경은 “이게 뭐라고 진짜 몰입되고 설레는지 모르겠다”며 마이너스 점수를 받고는 실제로 기분 상한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나홀로족 시청자들도 “몰입하면서 봤다” “외로운 생활에 가상으로나마 대리만족을 한 것 같다” 반응을 남겼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나홀로족의 식(食): ‘식샤를 합시다2’
tvN 월화극 ‘식샤를 합시다2’(이하 ‘식샤2’)는 나홀로족을 소재로 이웃 나홀로족들과의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를 그린다. 작가진 전원이 1인 가구여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알려졌다.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 등 나홀로족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이 드라마는 리얼 먹방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월화극 ‘식샤를 합시다2’는 1인 가구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리얼 먹방으로 주목 받고 있다. 사진제공 = tvN
식도락은 즐거운 일이지만 전통적인 식도락은 ‘함께 맛있게 먹기’였다. 함께 먹어야만 맛있다면, 그럼 나홀로족은 식도락을 포기하란 말인가? 이 TV극은 이런 낡은 관념에 도전한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음식으로 달래고, 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홀로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식이다. 탕수육, 깐쇼새우, 튀김요리, 감자탕 등 음식이 등장해 군침 돌게 만든다.
연출을 맡은 박준화 PD는 “극 중 1인 가구로 나오는 각 캐릭터의 개성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 패턴 등이 모두 작가들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 많다”며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감성을 먹방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이들의 갈등과 사랑을 음식과 연결시켜 드라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미술가-디자이너가 꾸며본 혼자의 방”
나홀로족의 주(住): ‘혼자 사는 법’ 전시회
커먼센터에서 4월 17일~5월 25일 열리는 ‘혼자 사는 법’ 전시는 1인 가구의 삶의 영역, 그 중에서도 주(住)에 주목했다. 권순우 큐레이터는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현 시대에서 관련 이야기와 담론은 많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밀접하게 접근한 이야기를 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더라”며 “나홀로족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전시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혼자 사는 법’은 1인 가구의 삶에 밀접한 접근을 시도하는 전시다. 사진은 임시적 숙박 형태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에어비엔비에 방을 실제로 등록한 길종상가의 작품. 사진 = 김금영 기자
구민자, 길종상가, 김동희, 김영나, 김재경, 김태희, 소목장세미, 양민영, 우주만물, 이미정, 이상혁, 이은우, 이웅열, 전산, 텍스쳐온텍스쳐 등 미술가와 디자이너 15팀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들은 ‘1인 가구’라는 키워드를 받고 떠오르는 영감을 바탕으로 전시를 꾸렸다.
전시는 커먼센터 1층부터 4층까지 펼쳐지는데, 독특한 구성이 가득하다. 보통 전시는 넓은 전시장에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지만, ‘혼자 사는 법’ 전시장은 201호, 202호 식의 여러 방으로 구성돼 있다. 1인 가구라는 콘셉트에 맞춰 각 작가들이 생각하는 삶의 구성 방식을 풀어놓은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에서는 혼자 살면서도 넓고 쾌적한 공간을 소유하는 부자 주인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도 그럴까. ‘혼자 사는 법’ 전시장에 배치된 방들은 크기가 각각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크지 않다. 보통의 1인 가구 상황에 현실적으로 접근한 결과다.
▲전산 작가의 ‘1룸’ 전경. 최소의 공간에 책상과 1인 가구에게 반려동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대한 나무를 들여 놓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1인 가구가 늘면서 1인용 가전제품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가구나 제품을 방 안에 들여 놓아야 할지, 혼자 살면서 성생활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 ‘나홀로 방’의 각종 이야기들이 모인 전시장이다.
김재경은 ‘생활과 비생활’ 방에서, 현재의 젊은 세대가 나홀로족이라는 틀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풍경을 프레임 위주의 가구로 드러낸다. 그가 만든 방에 들어서면 공간이 두 개로 나뉜다. 생활과 비생활 공간으로, 생활공간에는 소파와 옷걸이, 집기와 가구 등이 놓여 있고, 비생활 공간에는 특이한 모양의 설치물이 들어서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양민영은 1인 가구의 방 안에 옷을 잔뜩 들여놓아 눈길을 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작가는 “1인 가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라는 생활양식 또는 가이드라인이 없던 상태에서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갑자기 과제가 떨어졌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1인 가구에게 집이란 존재는 과거처럼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평생 사는 공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월세나 보증금 등을 따져가며 옮겨야만 하는 공간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떠나는 캠핑에서 모티브를 얻어 캠핑 도구를 바탕으로 가구를 생활공간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밥솥, 커피포트, 미니 주방, 접을 수 있는 소파까지 모든 도구들이 언제든 쉽게 정리하고 떠날 수 있는 형태다. 비생활 공간에 대해서는 “설치물들이 각각 떨어져 있는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외롭고 텅 빈 느낌과도 같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생활도 나홀로 해결해야 하는 슬픈 방
이미정은 혼자 사는 방에서 어떤 성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상상에서 출발해 1인 가구의 방 ‘더블 라이프 위드---’를 꾸렸다. 작가는 여성이 혼자 하는 성생활을 위한 가구와 각종 기구를 제작해 배치했다. 작가는 “기존에 ‘자위’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작업을 이어왔는데 1인 가구라는 주제를 받고 두 가지를 접목시켜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혼자 사는 방은 침대 넣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성생활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나름의 생각을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이미정의 ‘더블 라이프 위드(Double Life with)---’ 방. 혼자 사는 방에서 어떤 성생활이 가능할지에 대한 상상에서 꾸려졌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방에는 남성 성기의 크기와 모양에 착안한 각종 아이콘이 귀엽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구멍이 뚫려 있거나 반대로 솟아 있는 등 남녀 모두를 위한 특별한 가구도 눈길을 끈다. 파스텔톤 분홍색으로 곱게 단장된 방이지만, ‘성생활도 혼자’라는 자조의 정서가 깔린 방을 보노라면 비극인지 희극인지 생각이 엇갈린다.
이웅열은 “혼자 생활하는 주거공간에서 업무와 휴식이 섞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스몰 오피스 홈 오피스’ 방을 만들었다. 같은 크기의 두 방을 연결하고 앙상한 구조의 가구를 설치했다. 시간에 따라 자동적으로 변하는 조명을 통해 일과 휴식 사이에 장벽을 쳤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바쁜 삶이 정리될지, 강제로 불이 꺼지면 마음 편히 잘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한다. 업무와 휴식이 거울처럼 대칭된 광경에서 비극이 경험된다.
길종상가는 임시적 숙박 형태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에어비앤비(Airbnb: 숙소의 일부를 빌려주는 온라인 비즈니스)에 방을 실제로 등록하고, 예약을 받아 공간을 공개하는 프로젝트 ‘커먼센터 앤 커몬비앤비 앤 길종상가’를 진행한다. 앞서 김재경처럼 ‘영원’이 아닌 ‘임시’의 의미로 전락한 1인 가구의 방의 의미를 짚어 씁쓸함을 전한다.
이밖에 다양한 작가들의 방을 통해 다른 나홀로족은 어떻게 자신의 공간을 구성하는지를 간접적으로 훔쳐보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전시의 마지막 주에는 1인 가구의 환경을 아름답게 꾸며줄 각종 미술품과 디자인 소품이 전시에 덧대어 소개되고, ‘혼자서도 잘해 먹어요’, ‘4인 가구 이면의 삶에 관해’ 등을 주제로 강연이 열릴 예정이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