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人 - 여성 미술 ②]“맨얼굴이 제일 예뻐. 화장 강요말라”
‘오늘 그녀가 웃는다’ 책 낸 정연연 작가
▲‘리멤버 유어 하트’, 종이에 수채화-혼합매체, 55 x 76cm, 201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0년 넘게 여성의 다양한 욕망과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해 주목받아온 정연연 작가는 최근 에세이집 ‘오늘 그녀가 웃는다’를 통해 당당하고 직설적으로 현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 60여 점과 함께 풀어냈다.
여자의 얼굴은 수백, 수만 가지다. 그러나 그 중 곱게 빗은 머리카락과 깔끔하게 올라간 속눈썹, 탐스러운 입술 등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더욱 사랑받는 시대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건 화려함 속에 감춰진 여자의 본래 맨얼굴이다. 책에서 작가는 여자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외면하던 여자 맨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아름다운 얼굴, 누군가의 찬사가 없어도 소중한 여자 자신의 얼굴이다.
그는 드라마 같은 사랑을 꿈꾸고, 외면이 아름다워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며, SNS 속 삶이 진짜 삶이라고 착각하는 요즘 여자들의 왜곡된 생각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여자들이 스스로 ‘여자의 적’을 자처하며 남자와 여자의 자유로운 공존을 해치고 콤플렉스를 만들어내는 일도 있음을 지적한다.
작가는 여성이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나르시시즘, 여성들의 뒷담화, 타인의 시선 등 여성에 관한 주제를 각기 다른 색깔의 테마를 잡아 전시를 열어왔다. 예컨대 2011년 ‘레드’ 시리즈에서는 여성의 나르시시즘, 즉 여성이 만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남성은 1차원적으로 “그래, 난 잘생겼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넌 예뻐” “넌 아름다워” 등 타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가치가 증명받기를 원하는 모습을 짚었다. 강렬한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이 매혹적이면서도 불길한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녀에게 중독되다’, 종이에 수채화-혼합매체, 130 x 90cm, 2011
2014년 ‘리멤버 유어 하트’전에서는 ‘블루&옐로’ 시리즈로 외모지상주의 시대 속 여성의 모습에 주목했다. 황금색과 노란색 등 세련되고 화려한 색으로 포장된 여성들이 화면에 등장했다.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꾸민 듯한 부자연스러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나이 들어 보이려고 화장을 짙게 하고, 성인 여성들은 조금이라도 더 어려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이 시리즈는 여성들이 동안 또는 섹시 콤플렉스에 빠진 이유를, 남성적 취향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에세이집 ‘오늘 그녀가 웃는다’는 작가의 생각을 모은 집합체다. ‘언제부터 예쁜 얼굴, 잘빠진 몸매가 착한 게 되었을까?’ ‘셀카 속 예쁜 얼굴은 당신의 얼굴이 아니다. 박제된 미소는 당신의 감정이 아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고 조금 뚱뚱해 보이고 조금 날선 것처럼 보여도 그게 바로 살아 있는 너의 얼굴, 너의 감정이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고운 말만 쓰고 몸가짐도 조신하게…. 이렇게 하면 여자인 거 맞아요?’ 등 현대 여성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인터뷰 - 정연연 “뻔뻔하다는 소리 들어도 맨얼굴”
- 10년 넘게 여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더니 이제는 에세이까지 펴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낀 점들이 많았다. 사회 안에서 정의되는 여성성,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정의되는 여성성, 여성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여성성, 타의에 의해 정의되는 여성성 등 여성 이야기는 하나로 정의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꾸준히 매년 테마를 잡으며 여성에 대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던 중 출간 제의를 받았고, 글과 그림을 함께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종이에 물감과 금박을 이용한 작업을 하다가 글을 써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 그림에서는 여자의 내면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책에서는 여자의 맨얼굴에 주목했다.
“맨얼굴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덧대어지지 않은 본래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요즘 시대엔 맨얼굴이 부끄럽게 여겨지고 ‘뻔뻔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화장으로 맨얼굴을 감춰야 예의라는 식이다.
정갈하게 화장하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얼굴, 짙은 화장 아래 속마음을 숨긴 채 활짝 웃어 보이는 얼굴, 옅은 화장을 하고 천진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얼굴 등 여자가 지닌 수백 가지 얼굴 아래 숨어 있는 본래의 얼굴에 주목하고, 그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오늘 그녀가 웃는다’에서 현대 여성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냥 같은 여자로서 여자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었다. 세상이 만들어낸 콤플렉스에 휘둘려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이 스스로의 만족보다 남자들의 아찔한 시선을 즐기기 위함은 아닌지, 얼굴의 흠을 없애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지만 사실은 마음의 흠을 돌보는 것이 더 시급한 건 아닌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했다. 더 당당해져도 된다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위로와 격려를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 여성 작가로서의 삶도 반영됐다고 들었다.
“나는 평소 털털하게 입고 화장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주위로부터 ‘좀 여자답게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다녀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의식돼 다이어트도 하고 밝은 색 옷도 입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여자다운 게 어떻게 정의되는지, 세상이 정해주는 기준에 내가 휘둘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잡티를 감추고, 다른 이들의 잣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높아진 기대치에 버거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예뻐 보이려는 모습이 안쓰럽더라. 이런 모습을 보면 현대 여성의 인권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하고, 사회 진출도 활발하다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게 과연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이고 행복일까? 난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여성들이 감추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