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라이벌]정웅인 vs 최원영, 허당 코믹연기 대결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서 정색연기로 웃음 안겨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 배우 정웅인(왼쪽)과 이시훈이 열연하는 모습. 정웅인은 극 중 연구에 실패하고 사기극을 준비하는 ‘허당’ 지킬 박사 역을 맡았다. 사진 = 적도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드라마와 영화에서 열연하던 배우 정웅인과 최원영이 한 무대에서 맞붙었다.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7월 5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다. 둘 모두 외모도 나쁘지 않고 머리도 좋지만 유머 감각이 현저히 떨어져 재미없는 ‘지킬 박사’ 역을 맡았다. 정웅인은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이후 2년, 최원영은 연극 ‘사랑의 헛수고’ 이후 6년만의 무대 복귀라 맞대결이 더욱 주목받는다.
기존 소설과 뮤지컬의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는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두 성격을 완전히 분리하는 연구에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 작가 미타니 코키가 비튼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연구가 실패한 상황을 코믹하게 다룬다. 코키는 연극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등 코미디극으로 유명한 작가다.
연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개발한 신약이 아무 효과가 없자 지킬 박사는 학회의 연구 보조금이 끊길까봐 전전긍긍한다. 이에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무명 배우 빅터를 섭외해 사악한 인격체 ‘하이드’를 연기해달라며 사기극을 준비한다. 리허설 중 지킬 박사의 약혼녀 이브가 찾아오고, 지킬과 빅터는 이브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아슬아슬한 연기를 이어간다. 이 ‘허당’ 지킬 박사를 연기하는 정웅인과 최원영의 매력이 색다르다.
TV에서 “죽일 거다” 살벌 정웅인
진지함과 코미디 사이 아슬아슬 줄타기
정웅인은 코미디극이지만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종일관 진지하다. 그런데 그 진지함이 웃음을 터뜨린다. 무대 복귀 이전 그의 대표적 이미지는 ‘잔혹한 살인마’였다. 1996년 드라마 ‘천일야화’로 데뷔한 정웅인은 2013년 TV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기황후’,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섬뜩한 악역으로 열연했다.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맡은 살인마 역은 “죽일 거다, 죽일 거야”라는 오싹한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신약을 마셔버리는 이브와 그녀를 말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코믹하게 펼쳐지고 있다. 왼쪽부터 신의정, 박동욱, 정웅인, 이시훈. 사진 = 적도
악역 전문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코미디 본능이 잠재돼 있던 것 같다. 싸이코패스나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살펴보면 그의 대표작에는 코미디도 많다. 시트콤 ‘세 친구’에서 결벽증을 지닌 정신과 의사를 연기했다. 당시 그는 썰렁한 농담으로 외면을 받기 십상이었는데,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도 자기 나름으로는 위트있게 던진다는 멘트에 약혼녀가 정색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 ‘두사부일체’에서도 강한 듯하지만 막상 목검이 없으면 얻어터지기 십상인 조폭을 열연했다.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허당이어서 웃기는 캐릭터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도 정웅인은 절제된 말투와 표정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는 그만의 연기 철학이 있다. “코미디 작품이 제일 힘들다. 지나치면 극의 흐름을 잃고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쇼가 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며 “과도한 애드리브는 극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 철저히 자제했다. 미타니 코키의 작품은 대본대로 하는 게 가장 코미디극의 매력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해 철저히 대본을 연구하고 외웠다”고 포인트를 말했다.
6년만의 무대 복귀 최원영
눈치없지만 매력적인 젠틀맨 변신
정웅인이 철두철미 절제된 말투와 표정을 벗어나지 않는 반면 최원영은 부드러움을 더했다. 그의 지적인 외모와 진중한 목소리에 극 중 약혼녀 이브는 시큰둥하지만, 공연을 보는 여성 관객들의 마음은 설렌다. 극의 안과 밖이 묘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극 중 지킬 박사 역을 맡은 최원영은 눈치없지만 훈훈한 매력을 지닌 모습을 연기한다. 사진 = 적도
드라마 ‘쓰리 데이즈’, ‘상속자들’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인 그는 올해 3월 종영한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다중인격을 가진 지성의 든든한 지원군 ‘안군’ 역으로 인기를 모았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남다른 수트 패션, 절제된 목소리와 말투로 캐릭터를 세밀하게 살리고 몰입도를 높이면서, 극 중 코믹한 상황에서는 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의 코미디 배우적인 요소가 부각된 작품은 드라마 ‘백년의 유산’이었다. 극 중 마마보이인 그는 어머니 등쌀에 사랑하는 아내 민채원(유진 분)과 이혼하지만 그 후에도 채원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들러붙는 ‘김철규’ 역을 연기했다. 한심한 남편이자 찌질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시청자들이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사랑받았다. 어머니의 강권에 따라 마음에도 없는 마홍주(심이영 분)와 재혼하고 그녀에게 벌벌 떨면서도 전 부인 채원에게는 마구 들이대는 눈치없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했다.
▲(왼쪽부터)지킬 박사 조수 역의 서현철, 무명 배우 빅터 역의 이시훈, 지킬 박사 역의 최원영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 = 적도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도 눈치없기는 여전하다. 야한 책을 읽었음을 감추려 하는 약혼녀에게 굳이 책 이야기를 꺼내고, 말끝마다 “아싸라비아” 등 썰렁 대사를 덧붙이며 재미있다며 웃는 모습이 왠지 웃기고도 짠하다.
최원영은 “드라마와 영화를 하면서 늘 무대에 갈증이 있었는데 6년 만에 복귀해 기쁘다”며 “대본을 보고 재미있어 무릎치며 웃었다. 이 작품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코미디를 할 때마다 행복함을 느낀다. 힘든 부분도 있지만 보람을 느낀다. 같은 배역을 맡은 정웅인 선배가 잘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