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人 - 표미선 서울예술재단 이사장]“미래 작가 발굴하고 미술향유 확대시킬 것”
▲포트폴리오 박람회 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표미선 이사장.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피카소가 평생 그린 그림이 7∼8만 점이라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 작가들은 스케치를 포함해도 3∼4천 장밖에 안 됩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에 불과 20여 점 내외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시를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5월 18일 서울 신문로 서울예술재단 사무실에서 CNB저널과 만난 표미선(66) 이사장이 재단 설립 배경에 대해 밝힌 첫 일성이다. 표 이사장은 국내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잠깐 주목받다 사그라지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작품 숫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젊은 작가들 사이에는 작업 환경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의한 반짝 인기로 전시와 판매가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정서가 팽배하고 있다는 점도 꼽았다.
“고객이 많아져도 팔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작품이 별로 없으니, 인기를 끌면 우쭐해져 가격만 높이는 작가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글로벌 고객이 작품을 찾아도 제 때에 작품을 보낼 수 없는 상태면 미술 시장에서 바로 도태되는 현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옆의 서울예술재단 입구. 사진 = 왕진오 기자
이처럼 척박한 국내 미술 환경을 개선하고 미술 향유 인구 확산을 위한 본격 활동을 전담하기 위한 비영리 문화재단인 서울예술재단이 지난 4월 7일 첫 발을 내딛었다. 초대 이사장은 지난해까지 15∼16대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가 맡았다. 표 이사장은 34년간 화랑 업무를 수행했고 협회 회장을 수행하며 대내외적으로 한국 미술을 알리는 일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인 미술인이다.
‘예술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큰 목적
그가 자신의 화랑 업무를 제쳐두고 미술인들을 위해 재단을 설립한 이유는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 및 예술 영역 확장, 사회적 서비스 확대를 통한 작가의 작업의욕 고취”를 위해서다.
일부에선 화랑협회에서도 할 수 있는 업무를 굳이 재단까지 설립하고, 퇴임 후 미술계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협회에서 재단과 유사한 업무를 진행하자고 제안을 했었죠. 하지만 회원사들은 자신들 화랑 업무도 팍팍한데 무슨 일을 벌이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또 회장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왜 하려냐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미술관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외부 재단법인에서 월급쟁이 이사장 제의가 들어왔죠. 하지만 화랑 일 하면서 쌓은 경험과 인맥을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미술계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의지가 더욱 컸던 것 같았습니다.”
표 이사장은 “제 뜻을 신께서 받아주신 것 같았죠. 재단 건물을 구한 것도 드라마틱하게 이뤄졌죠. 일을 벌인다는 소문에 은행 지점장들이 다리를 놔줬고, 대사관이 임대해달라고 해도 마다했던 600평 규모의 이 건물을 작년 12월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국회의원)은 재단 1호 발기인이다. 또 소설가 조정래와 은행권과 대기업 임원들이 표 이사장의 뜻에 동참했다. 김&장은 무료로 법률자문을 해줬고 흥국생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술품에 대해 도난 운송 보험 분야에 도움을 제공했다.
“돈도 별로 없어 걱정했는데, 때마침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수장고에 오랫동안 있던 옛날 작품을 여러 점 팔 수 있었어요.” 이렇게 모은 10억으로 건물을 수리하고 첫 행사로 ‘포트폴리오 박람회’를 진행했다.
지난 4월 7일 1차로 27명을 뽑는 박람회에 127명의 작가들이 이른 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공모 작가와 심사위원, 재단 설립에 도움을 준 인사 등 400여 명이 모여 밤 11시까지 재단의 출발을 격려했다.
포트폴리오 박람회는 7인의 심사위원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비평과 발전 방향에 대해 1대 1로 질문했고, 2차 심사를 통해 5월 30일 최우수상 2인을 선정해 상금 10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수상 작가들에게는 재단 전시 공간 및 외부 기업형 갤러리에서 전시할 기회도 주어진다.
포트폴리오박람회, 큐레이팅박람회 등 연속 기획
표 이사장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 박람회를 마무리한 후 큐레이팅 박람회를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전시 기회를 찾지 못하는 작가도 문제지만, 이들의 전시를 기획할 국내 미술 관련 학과 졸업자들 대부분 놀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기획이다.
“고학력 인력들은 전시 공간이 자신들을 찾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전시 기획서를 만들어 심사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뽑힌 큐레이터들에게 재단과 협력 관계에 있는 전시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포트폴리오 박람회 참여작가 장재혁의 ‘Tetrapods’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재단은 또한 평론가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평론을 미리 써달라고 주문한다. 전시가 없더라도 미리 작가를 연구하고 글을 써놓으면 재단이 우선 출판을 해서라도 평론 아카이브를 만들어 놓겠다는 이야기다.
서울예술재단은 실질적으로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미술 향유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표 이사장은 큰돈은 아니더라도 1만 원씩이라도 기부할 후원자들을 찾고 있다. 이런 후원자들이 바로 컬렉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100분의 1 가격으로 대여해주고, 작가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 문화-예술 관련 강의와 아트 투어에의 참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바로 후원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는 것이고, 메디치 가문이 가졌던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긍지를 공유하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