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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강민정]형상·이미지 벗어난 자유로운 색띠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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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2호 김종근 미술평론가⁄ 2015.05.27 09:06:42

▲강민정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종근 미술평론가) 로렌스(D. H. Lawrence)는 말했다. “예술은 가장 섬세하고 깨닫는 형태이며 대상과 일치하면서 하나의 의미를 갖고 존재한다. 그림은 화가의 내면세계로부터 시작돼야만 하며 이것은 의식 속에 살아 있는 이미지로서 생생한 환상이면서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림이란 이처럼 섬세함을 동반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다. 강민정의 그림들은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자신 내면의 깊은 울림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추상표현주의자들이 고뇌했던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살바도르 달리가 말했던 ‘그림이란 숱한 비합리적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천연색 사진’처럼, 미술이란 결국 그것을 창조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강민정, ‘그린의 인상’. 캔버스에 아크릴릭, 72.2 x 60.6cm, 2014.

강민정은 감정의 본능에 철저하게 의지한다. 그 의지된 붓질과 감성적인 프리즘을 통해 이성적이며 어떤 색이 어디에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한 즉흥적인 작품으로 완결시킨다.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초기 예술가의 압박감에서 그는 해방돼 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스러운 우연과 충동으로 열정적인 행위로 작품을 한 그에게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절대적 가치가 부여됐는지도 모른다. 잭슨 폴록처럼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은 채 페인트를 들이붓고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강민정, ‘희망’.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7 x 91cm, 2014.

그는 보편적인 미술 작품에서 관습적으로 기대하고 고려해야 할 조형적인 요소들을 모두 거부하거나 팽개친 채 철저하게 감성의 손놀림에 따라 물감을 칠하며 때로는 무지개 같은 일정한 무늬 형상을 그려낸다. 다소 즉흥적인 회화들을, 그는 클로드 모네의 프로방스 풍경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인상적이다.

그림의 형태는 없이 그림의 본질적인 요소인 색, 선, 캔버스 등만 남았다. 캔버스에 한 가지 색으로 칠한다거나 캔버스에 선만 몇 개 그려 있다거나 또는 붓질 자국만 겹쳐 완성하는 형태가 나타난다. 추상이란 대상을 분석적·구성적으로 해석한 점에서 그에게 추상미술은 명백히 관념미술이다. 표현주의적이며 격렬한 색채의 약동을 추구하는 한편 ‘차가운 추상’이 이지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강민정, ‘꽃밭’. 캔버스에 아크릴릭, 72.2 x 60.6cm, 2015.

추상적 선의 개념을 현대예술은 제공한다. 추상적 선은 기하학이나 직선적인 것으로는 정의될 수 없다. 자연적 형태에서 해방된 추상적 선의 변형 능력이 기하학의 홈 파인 공간 안에 다시 갇히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줄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강민정은 색 띠를 화폭에 변형시킴으로써 ‘추상’을 기하학적 형상 안에, 직선과 사각형, 비례의 규칙 아래 다시 가둔다.

‘즉흥(Improvisation)’이란 제목으로 그려진 일련의 그림들은 자연적 형태에서 벗어난 선과 공간의 자유로운 흐름을, 그 흐름이 만드는 힘을 종종 폭발할 듯한 강한 밀도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그림을 구별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 자유로운 선과 공간에 새로운 ‘법칙’을 부과한다. 선이 형태적 추상의 길로 자유로운 선의 흐름을 유도하고 결국 선-면에 가두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강민정, ‘프리즘(Prism)’. 캔버스에 아크릴릭, 72.2 x 60.6cm , 2015.

그는 정확한 기하학적 선과 정확하지 않은 비기하학적 선의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경우 의도적으로 고정하고 가두는 경직된 선을 만들기 위해 기하학적 선으로 사람이나 형상을 그리며, 이를 자나 컴퍼스를 쓰지 않은 구불구불한 선과 대비시킨다.

그런데 더욱 더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것은 자로 그린 직선으로 곧게 파인 그 길이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숱한 샛길들에 의해 잠식돼 있다는 점이다. 아니, 반대로 그 곧은길은 그 많은 샛길의 자유로운 펼쳐짐을 관통하고 포획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선과 공간에 부여하는 그만의 규칙.
형식 탈피한 선 속에 ‘일관의 구도’ 발견

그는 추상이란 형상이나 형태와 더욱 더 거리가 먼 변형임을 새로운 층위에서 보여준다. 형식의 변형이 모든 종류의 형식화에서 벗어나는 탈형식화의 선을 그릴 때, 그것은 ‘일관성의 구도’에 도달한다.

▲강민정,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캔버스에 아크릴릭, 53 x 45.5cm, 2014.

강민정, 이제 그 개인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경영학 공부를 위해 영국에서 4년 정도 유학 생활을 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중도에 귀국했고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그림에 빠져들었다. 온전히 그림에만 몰입했다. 마티스가 법학을 공부하다 미술로 돌아선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어떤 때는 밤을 새우면서 두세 점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내 또 그 그림을 완전히 뒤엎었다. 이제 더 이상 그릴 물감, 캔버스가 없어 그림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 그림들을 모두 뒤엎었다고 이미지를 보내줬다. 그는 매우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오페라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다. 그렇게 그는 수개월간 밤낮으로 그림만 그렸다.

▲강민정, ‘라벤더와 유채꽃’. 캔버스에 아크릴릭, 53 x 45.5cm, 2015.

수십 여 점의 작품들은 사실 이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어떤 그림들은 마치 로스코의 그림처럼 색면추상에 가깝고, 로스코 영향의 흔적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그림들은 온전히 그의 창작이다. 그것은 그의 영혼의 언어이며 감정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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