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큐레이터 다이어리]안광식의 따뜻한 대구 작업실 방문기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대구로 출장 간 길에 안광식(42) 작가의 작업실에 들렸다. 저녁 9시, 늦은 밤에 도착했고 인적이 드문 길이라 그런지 더욱 깊은 밤이라고 느껴졌다. 작업실은 대구 봉산문화거리와 50m 떨어진 대봉동의 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안 작가는 2010년 선화랑 330인 전시와 2015년 예감전에 참여한 작가다. 필자는 편안하고 아련한 향수를 불러내는 안 작가의 작품에 흥미가 있었고, 인정이 많은 안 작가의 모습이 인상 깊어 꼭 한번 작업실에 방문하고 싶었다. 특히, 2014년 12월 열린 서울아트쇼에 출품한 신작 ‘Nature-Diary’는 필자를 오랫동안 그림 앞에 머물게 했다. 단아한 모습의 꽃과 항아리는 단색화의 파스텔 색감이 잘 어우러져 많은 것을 비워낸 것처럼 보였지만,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날 작업실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작가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경북 의성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아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당시 의성은 읍에 나가려면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시골이었고, 동네에서는 제가 사고뭉치, 개구쟁이로 알려졌었죠.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서자 시골의 교감 선생님은 불현듯 저에게 미술 전문지에 별책으로 나온 해부학 관련 책을 주셨어요. 그때 무엇인가 사명감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 기억에도 그날의 일이 깊이 남아 있어요. 시간이 흘러 동창회에서 책을 주신 교감 선생님께 여쭤보니 ‘너에게 미술적 감각이 보여 손에 쥐어줬다’고 하시더군요.”
입선도 못해 실망했지만 다음날 연락이…
불현듯 찾아온 그 일로 1년 후 촌 동네 개구쟁이는 홀로 대구로 전학을 가게 됐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형제들은 의성에 남겨두고 혼자 대구로 떠났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과 더 큰 곳에서 배워야 한다는 열정이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도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고 한다. “대표작 ‘Nature-Memory’를 시작하게 된 것도 유년시절 마음에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대구로 가는 비포장길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겼고, 그때 자주 본 풍경이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는 현재의 작품이 됐다. “당시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의성에 갈 때는 설레었는데, 대구로 돌아오는 길은 외롭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강가를 따라 이어지는 찻장 밖의 풍경들이 따뜻했고, 그 풍경에서 위로받았어요. 인상적인 그 풍경 안에는 그리운 가족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죠.”
그의 청소년 시절, 당시 경북에 예술고는 여자만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있었는데, 경북예술여자 고등학교였다. 예고에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안 작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미술부에서 활동하며 꿈을 키웠다. “저는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 2학년부터 유화를 그렸습니다. ‘몽마르트의 언덕’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제 첫 작품으로, 상상으로 그린 풍경화였어요. 노천카페의 빨간 지붕과 그 주변의 풍경을 흔들리는 것 같은 회화적인 표현으로 시도했어요.”
경북예술고에서는 매해 미술실기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경북교육청이 주관하는 이 대회에는 많은 미술부 학생과 예고생들이 참여했다. “실기대회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명씩 상장의 내용과 학생들의 이름을 불렀고, 수상 명단에 제 이름이 없었어요. 기대를 많이 했던 대회였는데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교육청에서 학교로 전화가 왔는데 제가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대상은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대상 명단을 확인조차 하지 않아 벌어진 일화였다.
한국적 정서가 담긴 그림
“대학 진학 후 학원 강사로 돈을 벌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어요.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손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바로 학교 안 화방에서 일하게 됐고 미술 재료를 배달하러 동양화과 작업실에 자주 왕래하면서 동양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선적인 느낌과 여백의 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죠. 그때 만난 한 여학생이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당시 다양하고 많은 동양화 자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애하면서 자료를 빌려 볼 수 있었죠.”
▲Nature-diary, 100.0X72.7cm, oil, stone powder on canvas, 2014.
필자를 오랫동안 머물게 한 안광식 작가의 최근 작품은, 이처럼 대학 때부터 한국적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정갈한 꽃과 도자기가 그려진 이 작품 ‘Nature-Dairy’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화병 작업 신작은 동양화의 종이에 스며드는 물성으로 그려진 작업입니다. 유화가 바탕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스톤 파우더(Stone Powder)와 젯소(Gesso)등의 재료를 섞어 10여 차례 바탕을 칠합니다. 유화가 스며들기 때문에 페인팅 후 여러 번 이 과정을 거쳐 작품이 태어납니다.” 안 작가는 한국적 정서에서 오는 여백과 선을 조응할 수 있는 깊이 있는 그림을 위해 천천히 한 겹씩 쌓으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긴 작업이다. “보이는 깊이가 아닌,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투명하게 비치는 깊이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성숙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안 작가는 “이것은 내면적이고, 비워내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Nature-Memory, 80 x 80cm, oil on canvas.
안 작가는 대학원 시절부터 옥빛으로 그린 풍경으로 대구에서 활동했으며, 2005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아트서울과 서울 사이드 아트쇼에 강가가 그려진 풍경(물 풍경)을 출품해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37살이 되는 해에 아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꿈꾸고 연구하는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이다.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