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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한성우 작가]“날 기억하는 풍경의 뒷모습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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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3호 김금영 기자⁄ 2015.06.04 09:08:36

▲한성우 작가는 자신의 주변 풍경에 주목하고, 이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캔버스에 담는다. 사진 = 김금영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 노래 ‘연극이 끝난 후’ 중 일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가 떠나 텅 빈 무대보다 화려함으로 꽉 찬 무대에 열광한다. 하물며 사람을 만나 인사할 때도 얼굴을 주목하지, 뒤통수를 바라보진 않는다. 그런데 한성우 작가는 어떤 대상, 특히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이하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앞면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뒷면이다. 스페이스비엠 ‘풍경의 뒷모습’ 전시 현장에서 작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전시장에 들어서자 하얀 벽과 대조되는 어두운 이미지들이 눈길을 끌었다. 멀리서 봤을 땐 형체가 불분명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여기저기 톱밥이 가득한 책상, 어지러이 놓인 의자 그리고 책으로 유추되는 사물들이 보였다.

▲한성우, ‘풍경 #5’. 캔버스에 오일, 116.8 x 182cm, 2015.

작품 속 배경은 평소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목공실이다. 그런데 그림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노래 ‘연극이 끝난 후’의 무대처럼 모두 떠난 뒤에도 홀로 그 자리를 지키는 풍경의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풍경의 앞면에 가려져 미쳐 드러나지 않던 뒷면의 새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목공실이라는 장소는 처음엔 아무 특징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이 공간에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고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커피를 마시다 만 종이 컵을 책상 위에 두고 가거나, 목공실 안의 물건을 가져가기도 하고, 작업을 위해 의자 위치를 옮기거나 나무를 잘라 톱밥이 바닥에 흩뿌려지는 등 흔적이 남죠. 사람들이 떠난 목공실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해요. 저는 이런 식으로 흔적을 기억하는 풍경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한성우, ‘풍경 #2’. 캔버스에 오일, 90.9 x 72.7cm, 2015.

처음부터 주변 풍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승민 스페이스비엠 디렉터에 따르면 작가는 매일 일어나 학교에 갈 때 마주하는 집 앞 풍경을 한결같다고 생각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마주하는 나무는 단지 나무일뿐 그 이상,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작가의 어머니는 같은 풍경을 하루하루 새롭게 바라봤다. 계절에 따라 나뭇잎은 색깔을 달리했고, 아침과 저녁에 내리쬐는 빛 또한 달랐다. 어머니는 “너는 예술가가 될 자격이 없다”며 작가의 주의력 없는 자세를 꼬집었다. 예술가로서 사물, 풍경을 ‘보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계기다. 그때부터 주위 풍경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평소에 관심도 없던,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바닥이 흥미를 끌었다. 친한 형이 작업하면서 닭 비슷한 모양의 조형물을 색칠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계속 물감과 조형물의 파편이 떨어졌다. 작업실이므로 깔끔할 필요가 없지만, 그 복잡한 작업실 안에서도 바닥에 새로운 흔적들이 남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재미있어 형이 작업하는 내내 작품 말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고.

▲한성우, ‘풍경 #7’. 캔버스에 오일, 53 x 45cm, 2015.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물감처럼 의도치 않게, 우연히 남겨지는 자연스런 흔적들을 간직한 풍경이 매력적이었어요. 학교 목공실에도 예견된 사람만 들르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들러 다양한 흔적을 남기기에 더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풍경을 그리려고 일부러 장소를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다. 유명 장소는 오히려 꺼린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을 보면 왠지 한 번 가보거나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함이 든다. “어릴 때 다닌 초등학교 교실 느낌이 난다”고 하자 작가는 “그게 바로 의도한 바”라며 손뼉을 쳤다.

“제 주변의 흔적이 담긴 장소지만, 어디에라도 있을 것 같은 풍경을 그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은 제 그림을 보고 자신이 다닌 학교를 떠올릴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미술학원 이야기를 할 수도 있죠. 제 그림 속 풍경을 보면서 각자 지니고 있는 기억의 흔적을 투영할 수 있는 거예요.”

특별할 것 없던 풍경에 남은 흔적들에 주목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을 강조한 작업이 특징

풍경을 바라보는 태도와 더불어 작업 방식 또한 변화를 거쳤다. 처음엔 풍경 사진을 찍은 뒤 그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차원적 재현 방식이었다. 지금은 사진보다 자신의 기억이 더 많이 개입한다.

▲한성우, ‘바닥’. 캔버스에 오일, 65.1 x 53cm, 2015.

일단 풍경을 간단히 스케치 한다. 이 과정에서 풍경의 본래 모습이 작가의 손에 한 번 걸러진다. 그리고 작업실에 돌아와 스케치와 자신이 기억하는 풍경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붓질을 시작한다.

초기 작업에 등장했던 풍경이 객관적이었다면 현재는 주관적-추상적 느낌이 더 많다. 그는 “일부러 또는 억지로 작업 방식을 바꾸려고 의도한 건 아니다.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풍경을 좋아하는 것처럼 작업 방식도 함께 서서히 변화의 시기를 거쳤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그의 작업에서 목탄 작품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목탄을 문지르거나 비비면서 그림을 그린다”며 “톤이 다양한 목탄은 유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얇은 가루가 종이 위에 쌓이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그 과정도 흥미롭다”고 말했다.

“물감을 사용하든, 목탄을 사용하든 풍경을 바라보고 그리는 작업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풍경을 그리게 될지 저도 궁금하네요. 현재 제가 존재하고, 이 순간에도 제 흔적을 기록하는 풍경을 치열하게 바라보고 또 기억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스페이스비엠에서 6월 20일까지. 작가의 시선이 담긴 풍경 12점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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