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골프 세상만사]골프를 입으로 친다고?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생명을 잇게 해주는 숨쉬기, 식도락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음식 먹기, 애정 표현의 극치 키스, 사상을 표현하는 말하기, 노끈 끊기, 추위 녹이기, 통증 완화(호~ 하는), 재채기나 딸꾹질, 하품(지루하기에), 혀 내밀어 남 놀리기(메롱~), 우표 붙이기, 굳게 다물어 분노 나타내기, 임시로 물건 잡고 있기 등 여러 일에 널리 쓰이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맞다. 입이다.
이제는 입의 여러 기능에 골프 치기도 포함해야 할 것 같다. 혹여 입으로 어떻게 골프를 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당연한 의문이다. 그런데, 가능하다. 골프장에서 간혹 하거나 듣는 말 아닌가. “넌 입으로 골프를 치는구나!” 그러니까 골프를 입으로 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다만 이게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좋을 땐 좋지만, 나쁠 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입방정’이라는 듣기 좋은(?) 우리말 놔두고 ‘구찌 겐세이’라고 하는 것. ‘구찌’는 명품이지만 골프에서 구찌는 결코 명품이 아니다. 골프 치면서 이런 재미가 없다면 참기름 빠진 비빔밥 맛과 같다며 적극 입놀림을 장려하는 팀들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정도가 심해 언쟁이 오가고, 심지어는 나중에 클럽으로 볼을 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치는 일로 번진다.
워터 해저드 앞에서 쩔쩔 매는 동반자에게 “오늘 날씨가 덥네! 목욕탕에 들러야 하지 않을까?”라며 결국 퐁당을 유도. 티샷을 치려는 친구에게 산 쪽을 보며 “저쪽에 애인 묘가 있을 텐데, 성묘나 하러 가지”라면서 오비 유도. 도그레그 홀에서 알아서 치려는데 “똑바로 멀리 보내시면 오비랍니다!”라거나, 경사진 홀에서 “요 홀만 오면 꼭 슬라이스가 나더라” 하기.
퍼팅 라인에서 경사나 마운틴 블레이크를 이리저리 재고 있는데, 장갑 찍찍이 소리를 내는 것도 모자라 “요즘 나온 신형 퍼터는 거리가 많이 나더라구!” 또는 “캬아~ 프로들도 젤 부담 갖는 거리가 남았네” 해주기.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왕진오 기자
앞 홀에서 드라이버 거리가 많이 났던 동반자가 타석에 올라가면 “아까 내가 ‘짱짱 러이!’라 외쳐주었나? 요즘 어디서 비밀 교습 받는 모양인데, 다시 한 번만 보여줘!”라며 이번 홀에서는 힘이 잔뜩 들어가 뒤땅이나 토핑이 나게 만들기.
또한 “250야드 지점에 크로스 벙커가 있어. 넘기든가 짧게 쳐야 할 걸?!” 이런 주문 야지(やじ)에 공은 어김없이 벙커를 찾아간다. 심지어 티샷을 하려는데 상대를 아주 자극하려고 이런 딴지도 건다. “아무래도 배꼽이 나온 것 같은데…. 벌타 먹을 것 같아서 치기 전에 이야기해 준거야!” 그러나 어드레스 풀고 보면 실제로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화를 내면 더욱 열나게 만든다. “미안해. 이쪽에 와봐! 꼭 배꼽이 나온 것처럼 보인다니까! 친구니깐 이야기 해 준거야.” 아! 맥 빠질 수밖에 없다.
골프장에서의 입방정 천태만상
그밖에도 엄청 많지만, 퍼팅 때 하는 악질(?) 입방정 두 개만 더 들겠다. 젖은 수건으로 공을 계속 닦을 때 “공이 물에 불으면 커져서 잘 안 들어가니 대충 닦아.” 뜸을 좀 들이면 “깃대 뺀 지 한참 돼서 홀컵 다 오므라들겠다!”라고?
어느 스포츠가 안 그럴까만 골프는 바로 멘탈과 직결되기에 작은 변화에도 아주 민감하다.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확 무너지게 하거나 실수를 유발케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어느 연예인 골프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들은 하는 일만큼 골프도 희한하게 친다. 앞서의 이 ‘구찌 겐세이’를 무한정 할 수 있는데, 상대가 그것에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이면 벌금을 내게 하는 벌칙이 있으니, 이들의 3분의 2는 클럽 대신 입으로 공을 친다. 필자는 그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했었다. “이런 룰, 당신들끼리 할 때만 적용해!”
뭔가에 집중하고 몰입해 있을 때 좋은 말을 해줘도 때로는 방해가 되는 법이거늘, 야유하는 말은 위험하고 위험하나니 골퍼들은 부디 삼가길 바란다.
(정리 = 이진우 기자)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