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들 배수진 격돌…따내면 영웅, 실패하면 암운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진우 기자)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권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6월 1일 관세청에 입찰 서류 제출이 마감되면 국내 유통 공룡들의 면세점 유치 대결이 최종 결론을 향해 치열하게 치러질 전망이다.
관세청은 15년 만에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내놓았다. 오는 7월 허용키로 한 입찰 대상은 대기업 2곳, 중소기업 1곳이다. 이에 따라 국내 면세점 업계 1, 2위인 롯데와 호텔신라를 비롯해 신세계, 현대, 이랜드 등 유통 공룡들은 물론 한화, SK, 현대산업개발 등도 대기업에 배정된 입찰 대상 2곳을 확보하기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이처럼 유통 대기업들이 대거 입찰에 나선 배경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기존 유통업이 성장 정체기를 맞은 가운데, 특히 면세점이 중국 관광객의 대거 내한과 맞물려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규 면세점이 자리를 잡으면 연간 1000억 원 안팎의 수익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열된 유치 경쟁에 대기업 오너들이 직접 나서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5월 29일 현재까지 대기업에 배정된 2곳의 서울 신규 면세점에 대한 허가 신청 의사를 밝힌 기업은 모두 7곳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 신세계DF, 현대백화점과 모두투어 등 합작법인(현대DF),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SK네트웍스, 롯데그룹, 이랜드그룹 등이다. 경쟁률이 3.5:1이다.
▲롯데면세점 본점에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이 북적대고 있다. 사진 = 롯데그룹
승자는 면세점이라는 새 날개를 달고 성장할 것이지만, 패자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기업의 성장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기업 오너들은 배수진을 치고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히 서울 지역의 면세점은 중국 관광객과 관련한 매출이 워낙 커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면세점 부지 낙찰 여부에 따라 대기업 오너들 의 입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관세청은 서울 시내 면세점 신청을 6월 1일 마감하고, 전문가 심사를 통해 사업계획서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7월 중 대기업 두 곳, 중소기업 한 곳의 사업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신성장 동력 확보” 오너들의 자존심 대결
대기업 오너들은 그룹 전체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는 식으로 이번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85년 역사의 신세계 본점 명품관을 통째로 면세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며 배수진을 쳤다. 정 부회장은 그간 경쟁사들에 비해 면세점 사업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2014년 김해공항 면세점에 이어 올 2월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을 따내며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 면세점 입찰을 위해 신세계DF를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키는 등 남다른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뒤 정 부회장은 “백화점, 대형마트, 프리미엄 아울렛 등 국내 최초의 유통 전문기업으로서 역량이 가장 앞서 있다”고 말하며 면세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면세점 본점 건물 전경. 사진 = 롯데그룹
정 부회장과 고종 사촌간인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은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과 전격 제휴를 맺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 회장이 지난 1월 면세점 유치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먼저 이 사장에게 합작을 제안했고, 최근 직접 만나 마침내 합작 카드를 성사시킨 것.
업계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와 함께 이 사장이 단독 입찰로는 쉽지 않았던 경쟁구도를 합작 카드를 꺼내 들면서 업계 1위 롯데의 뒤통수를 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상 롯데와 호텔신라의 경우 신규 면세점 사업을 따내도 특혜 시비는 물론 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롯데도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사장의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된 가운데, 이번 서울 신규 면세점 확보가 독자적인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정 회장과 손잡고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한류·관광·쇼핑을 겸한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용산 아이파크몰이 강북과 강남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다, 용산전자상가가 인접해 공항철도까지 연결된다면 면세점으론 최적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장과 정 회장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현대산업개발-호텔신라 합작법인이 면세점 특허를 따내기 위해서는 독과점 논란을 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호텔신라는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의 26.5%를 차지했고, 19.9%의 지분을 보유한 동화면세점을 포함하면 호텔신라의 점유율은 33.2%에 이른다.
▲신세계는 본점 본관을 통째로 면세점 부지로 선정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사진 = 신세계그룹
호텔신라가 합작 법인을 설립한 배경에도 독과점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에 이 사장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다면 시험대를 무난히 통과함과 동시에 오너 경영자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다. 정 회장의 현대산업개발 역시 유통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여의도 대격돌…승자는 누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유통 등 서비스 사업 분야에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해야 한다”며 유통사업 강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이에 한화갤러리아가 핵심 부지인 여의도 63빌딩을 면세점 부지로 선정하고 적극 공세에 나섰다.
한화갤러리아는 여의도 63빌딩에 면세점을 개설하고, 쇼핑·엔터테인먼트·식음료 시설을 연계한 63빌딩 문화쇼핑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명동과 종로 등에만 집중된 면세점 관광객들을 분산시키면서, 서울 서남권 지역에 대한 관광 진흥 효과도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변의 노량진 수산시장과 선유도공원, 한강공원, 국회의사당 등 지역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외국인 관광 벨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한화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몫으로 배정된 면세점 경쟁에 유진기업이 뛰어들면서 ‘여의도 면세점’ 카드를 내놓자, 난관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유진기업이 여의도 전 MBC사옥을 후보지로 정한 탓에 한화와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관세청이 여의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몫의 면세점을 동시에 내줄 가능성은 작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유진기업이 중소기업 몫 면세점을 확보할 경우 한화로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한편,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한화 본사에 출근하기 시작했으며, 이라크 한화건설 건설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5월 15일엔 한화생명 보험왕 시상식에, 같은 달 22일엔 충남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 강남-상생으로 승부수…롯데엔 힘겨운 싸움될 듯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도 면세점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사업권을 따내는 데 그룹의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아울러 ‘강남 면세점’과 ‘상생’ 카드를 내세우며 면세점 사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 관광객들의 강남행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현대백화점의 강남 면세점(코엑스점) 주장이 관광객의 강남북 분산 효과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반응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아울러 현대백화점은 모두투어와 서한사, 엔타스듀티프리, 에스제이듀코, 제이앤지코리아 등 중소기업들과 함께 합작법인 ‘현대DF’를 설립했다. 다분히 상생에 초점을 둔 행보로 보인다. 정 회장은 최근 “상생과 동반성장에 초점을 맞춰 면세 사업을 진행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롯데는 독점 논란을 의식해 뒤늦게 동대문 피트인을 면세점 후보지로 정하고 출사표를 냈으나 내외부에서 나오는 입찰 전망은 암울한 편이다. 롯데는 연말이 되면 소공점과 코엑스점 면세점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연말 대전(大戰) 준비 차원에서라도 6월 1일 입찰 참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면세점 시장의 과반(매출기준 약 52%)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가 신규 사업권을 획득하면 특혜 의혹 및 시장 과점 논란에 불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면세점 사업의 퇴조로 인해 그룹 내 입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 회장이 비록 친형인 일본 롯데그룹의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그룹 후계 경쟁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이제는 자신만의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그룹 오너들이 전면에서 면세점 사업을 지휘하는 만큼 사업권을 따낸다면 오너의 능력이 돋보이겠지만 패배할 경우엔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이진우 기자 voreo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