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국보급 250점 한국 나들이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을 설명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김승익 학예연구사.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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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예술은 일종의 무기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예술을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폴란드 화가 얀 마테이코(1828∼1893)가 조국 폴란드의 몰락, 타국의 침략에 대한 항거를 기념비적인 역사화 연작으로 발표하면서 당시 시대를 이야기한 대목이다.
정치적 억압의 시대에 예술은 폴란드 국민에게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시와 음악, 회화는 폴란드의 영혼을 간직한 국가 그 자체였다. 한편, 강력한 후원자였던 교회와 귀족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예술 제도와 향유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화에서는 조국의 역사와 자연, 민속, 도시의 풍경 등 다양한 주제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역사화는 19세기 폴란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장르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에 대한 애정을 담아 주옥같은 음악을 남긴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 그의 영혼이 담긴 친필 악보 ‘마주르카 마장조 op.6 No.3’이 국내에 첫 공개된다. 또한 폴란드의 국보급 예술 작품들 250여 점이 한국 나들이에 나선다.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에 공개된 ‘성모자’상. 사진 = 왕진오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6월 5일부터 기획특별전 ‘폴란드, 천년의 예술’을 통해 중부 유럽의 중심 국가, 폴란드의 역사와 예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 전시를 개최한다. 이 전시에는 폴란드 국민화가 얀 마테이코의 대형 역사화를 비롯해 중세 제단화와 조각, 폴란드 전통 복식 및 각종 공예품, 19∼20세기 폴란드 회화와 조각 등 폴란드 예술의 진면목을 확인시키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유럽의 중심” 폴란드의 자존심과 예술
유럽의 동서 경계에서 드넓은 평야에 위치한 폴란드는 전쟁과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왔다. 바르샤바국립박물관을 비롯한 19개 기관에서 온 이번 전시 작품들은 이러한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관측에 사용했던 도구들. 사진 = 왕진오 기자
한국 전시를 위해 공개된 전시품 중에 조국을 연주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관련 유물은 주목할 만하다.
“때로는 그저 신음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내 절망을 피아노에 쏟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1830년 쇼팽이 직접 쓴 ‘마주르카’는 폴란드 국보급 문화재로, 폴란드 전통 무곡을 차용해 작곡한 피아노 곡이다. 폴로네즈와 더불어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를 향한 그의 마음이 담긴 곡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에 공개된 ‘비엘리츄카 소금 광부 협회의 뿔피리’, 은, 36 × 47cm, 1543.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폴란드를 대표하는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자료들이 함께 선보인다. 그가 공부했던 크라쿠프 야기엘로니아 대학 박물관으로부터 옮겨온 그의 지동설 주장 자필 원고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당시 그가 천문 관측에 사용한 도구인 ‘아스트롤라베, 토르퀘툼’ 등 코페르니쿠스의 사상과 지동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자료가 공개된다.
폴란드의 1천년 예술을 5부로 나눠 소개
전시는 966년 건국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의 역사적 흐름을 5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 1부에서는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의 종교적 신앙심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세 예술 작품이 소개된다.
폴란드의 중세 예술은 주로 교회 건축 장식이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11∼12세기에는 건축의 일부로서 돌 조각이 장식됐지만 13∼14세기에 점차 교회가 웅장해지면서 그림과 조각상이 많아졌다. 교회 건축의 중심인 제단은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제작한 아름다운 조각상들과 제단화로 꾸며졌다.
▲ 2부에서는 16∼18세기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전성기 폴란드의 문화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유물을 접할 수 있다. 당시 폴란드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폴란드 귀족들은 자신들이 고대 동방의 용맹한 사르마티아 사람의 후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동방의 영향을 받은 옷을 입고 가문의 문장과 글귀를 넣은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정교하고 값비싼 공예품을 수집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 3부와 4부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세 나라로 영토가 분할된 이후 100여 년이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 기간 동안의 폴란드 예술을 살펴본다.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에 공개된 ‘날개를 단 기병, 후사르’. 사진 = 왕진오 기자
일명 ‘억압의 시대에 피어난 영혼의 왕국’이란 부제가 붙은 공간은 18세기 후반 국권을 상실한 시대였지만 폴란드 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피어난 것을 보여준다. 폴란드의 역사와 국토, 민속을 주제로 한 애국적인 주제가 각광받았으며 새로움을 겨냥한 다양한 장르의 회화가 인기를 끌었다.
▲ 5부에서는 1918년 독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폴란드 미술을 이끄는 다양한 흐름과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20세기로의 전환기에 폴란드 예술계에는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애국적인 주제를 벗어나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했고 시와 음악, 신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16세기에 러시아 제압했던 영광의 역사를 재현
폴란드 독립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전시인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폴란드 국민화가 얀 마테이코의 대형 역사화다. 특히 바르샤바 왕궁 소장의 폭 6미터, 높이 4미터의 ‘프스코프의 스테판 바토리’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얀 마테이코, ‘프스코프의 스테판 바토리’, 캔버스에 오일, 322 × 545cm,1870∼1872.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16세기 러시아를 제압했던 영광의 역사를 재현한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 반러시아 봉기의 실패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당시 폴란드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독립심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제단화와 조각상들은 중세 미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15세기 교회 건축이 중심이었던 제단을 장식한 조각과 제단화들은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중세 예술의 대표작이다.
특히 폴란드에서 항상 숭배의 대상이었던 동정녀 마리아는 여러 형태의 조각으로 제작됐는데, 풍부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이 아름다운 성모상들은 풍부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16∼18세기 폴란드 귀족 특유의 정신문화인 ‘사르마티즘’이 반영된 복식과 무기, 공예품들이 소개돼, 국내 관객들에게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폴란드 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